
"광화문 광장은 원래 시민들의 문화 중심지로 설계됐지만, 그동안 집회 중심으로 쓰여졌죠. 이번 BTS 공연을 계기로 문화 공간으로도 균형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지난 21일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이 끝난 뒤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안 사장은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해 국립극장장,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및 원장 등을 거친 공연계의 산증인이자 베테랑이다. 2021년부터 세종문화회관을 이끌고 있는 그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번 무대의 중심에 서있었다.
문화 패권의 중심, 서울
안 사장은 이번 공연의 의미를 문화사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인류 근현대사에서 문화 패권은 경제적 부와 궤를 함께해왔습니다. 19세기 파리와 비엔나를 거쳐 20세기 뉴욕에 안착했죠. 21세기엔 상하이나 홍콩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2026년 세계 문화의 중심이 서울임을 이번 공연이 입증했죠. '넥스트 스탠다드'는 서울입니다."
BTS가 '아리랑'과 한국적 색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주목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 대해 "세계 무대를 누비던 BTS가 자신의 국적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리랑'은 이제 한국의 옛 노래가 아니라 세계인들이 이해하는 글로벌 언어가 됐고, BTS는 그 DNA의 후손임을 당당히 증명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19세기 후반 유럽을 강타했던 '일본풍'이 일시적 유행이었다면, 지금의 K컬처는 세계 주류 문화의 흐름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도 했다. "과거 세계인들이 런던이나 뉴욕에서 무엇이 새로 나올지 궁금해했다면, 이제는 한국을 궁금해합니다. 이번 공연은 '우연'이 아닌 오랜 '축적'이 만들어낸 현장이었습니다."
공연 당일, 대중교통으로 출근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공연의 실질적인 베이스캠프였다. 광화문의 '오픈 큐브' 무대와 가장 가까운 건물 중 하나인 세종문화회관은 공연 몇 주 전부터 넷플릭스·하이브·서울시와 준비 회의와 사전 점검을 함께했다.
대극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2000여 명 아미(ARMY)의 대기 공간, 옥상은 190개국으로 송출될 영상의 컨트롤 타워로 활용됐다. VIP들의 대기 공간도 이 곳에 마련됐다. 4개 극장은 하루 휴관하며 전면 지원에 나섰다. 안 사장은 공연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안전시설을 점검했고, 공연 당일에는 몰려드는 인파를 고려해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다고 했다.
광화문을 '문화의 공간'으로
그는 이번 공연 이후 발생할 유무형의 효과에 주목했다. 광화문 일대는 앞으로 아미들의 새로운 성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그중 세종문화회관은 핵심 랜드마크다. BTS 5집 앨범 타이틀 이미지가 새겨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계단은 이미 유명세를 탔다.
더불어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도 더욱 주목받을 기회다.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佾舞)'와 같은 작품은 한국의 매력을 드러내기 좋은 콘텐츠다.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무는 지난 1월 뉴욕 무용계 최고 권위의 '베시 어워드' 최우수 안무가상을 받으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는 "K팝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전 세계에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광화문 광장이 문화 공간으로 정체성을 회복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민들이 문화적 열망을 함께 나누고, 클래식·뮤지컬·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무대에 서는 야외 문화 공간으로 광화문이 자리매김하길 바랍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