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불황의 늪에 허덕이던 국내 디스플레이 생태계가 작년 말부터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으로 세계 1위 IT업체인 애플이 중국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사용을 줄이자 한국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어서다. 대형 TV에 쓰이던 고수익 OLED 패널이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중소형 IT 제품으로 본격 확산하는 트렌드도 기업 이익을 끌어올리고 있다.
◇공급망 재구축 나선 애플

2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1위 디스플레이업체인 BOE의 애플 전용 생산라인(쓰촨성 면양) 가동률은 2024년 82%에서 지난 2월 48%로 급감했다. 애플에 공급하는 물량이 당초 계획한 물량보다 40% 넘게 줄어든 게 타격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미국 정부가 중국산 디스플레이 공급을 차단한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국방부의 중국 군사기업 명단(1260H 리스트)과 미국 상무부 수출통제 명단, 미국 재무부의 중국 군산복합체 투자 금지 명단(NS-CMIC) 등에 BOE와 차량용 디스플레이 기업인 티엔마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1260H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은 오는 6월 말부터 미 국방부와 거래할 수 없다. 내년부터는 민간 IT 기업도 해당 기업 부품을 쓰면 미국 정부에 납품하지 못한다.
애플 등 미국 업체는 이런 정부의 규제에 선제 대응하고 있다. 애플이 올해 출시할 아이폰18, 아이폰 폴드, 맥북프로, 아이패드 미니 등의 제품에 들어갈 OLED 패널 상당수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제품인 것으로 전해졌다. BOE 공장이 있는 중국 쓰촨성에서 애플 모듈 공장이 있는 베트남으로 향하는 OLED 디스플레이 패널 물량은 지난해 2월 255만장에서 지난 2월 115만장으로 50% 넘게 급감했다. 같은 기간 천안·아산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OLED 패널 모듈은 882t에서 1048t으로 19% 증가했다.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사가 더 큰 수혜
‘애플 특수’는 이미 디스플레이업체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업계는 업황 반등이 지속될 경우 IT용 OLED 라인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온 삼성디스플레이가 더 큰 수혜를 볼 것으로 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수년간 4조원 이상을 들여 완공한 세계 최초의 8.6세대 IT용 OLED 라인을 시험 가동 중이다. 8.6세대 OLED(통상 2250×2600㎜ 원장) 라인은 기존 6세대 OLED(1500×1850㎜)보다 패널을 더 많이 싸게 만들 수 있어 더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대규모 시설 확충보다 기술 투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아직 8.6세대 투자를 결정할 만큼 수요 가시성이 충분하지 않다”며 “기존 6세대 OLED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투자 전략의 차이로 올해 협력사의 경영 실적은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8.6세대 신규 라인 안정화를 위해 올해 검사 장비와 공정 장비를 대거 투입한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셀 공정 검사 장비를 공급하는 영우디에스피는 3년간의 적자를 딛고 지난해 5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삼성디스플레이 발주 물량이 몰리면서 지난해 4분기에만 5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식각(TFT 공정) 장비를 공급하는 아이씨디의 영업이익은 2024년 267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45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소재 업체인 덕산네오룩스 관계자는 “애플의 공급망 조정으로 중국 생산량이 줄어드는 대신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IT 기기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