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신축공사 중 근로자가 추락사한 사고에서 현장소장이 직접 위험한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건설 현장에서 예견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안전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면 안전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20일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현장소장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고는 2020년 6월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러시아 국적의 20대 근로자 B씨는 아파트 외벽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설치된 작업 발판 일체형 거푸집인 ‘갱폼’ 위에 올라갔다가 발판과 함께 약 3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이 사건은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 사고와 관련해 현장소장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는지, 그리고 그 위반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1심은 피고인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와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부분은 무죄로 판단해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사망한 것은 A씨가 잘못된 작업 방법을 지시하거나 안전 의무를 위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사건 당일 갱폼의 고정 볼트를 전부 해체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의 사망에 현장소장인 A씨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갱폼 일부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중단돼 있었고, 근로자가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해당 구조물을 작업 발판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가 외국인으로 한국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명확하고 추가적인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