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생산설비 유지·보수 회사 직원 A씨는 2019년 12월24일 동료들과의 술자리 도중 휴대폰 카메라로 노상방뇨하는 동료 B씨를 촬영한 뒤 동료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게시했다. 다른 동료 직원이 이 사실을 이튿날 알렸지만 B씨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2년 2월 B씨가 탈의실에서 나체 상태로 속옷을 입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2회에 걸쳐 사진을 촬영한 뒤 B씨에게 전송했다.
B씨는 결국 노조 '조합원 고충 상담'을 통해 피해사실을 신고, 제보 내용은 회사 윤리경영팀으로 전달됐다. B씨는 A씨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했다.
동료 신체 촬영…회사, 유죄 판결 나오자 '해고'
회사는 A씨와 B씨를 상대로 사실관계를 조사했다. 공은 HR팀으로 넘어갔다. HR팀은 A씨와의 질의응답을 거쳐 징계 혐의 사실을 확인한 이후 서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직 3개월을 통보했다. 하지만 '정직'은 이내 '해고'로 변경됐다. A씨 형사사건을 다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와서다. 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23년 2월 확정됐다.
회사는 3개월 뒤인 같은 해 5월 노사 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근거로 A씨를 해고했다. 단체협약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됐을 경우 취업규칙은 형사상 유죄 판결이 확정됐을 경우 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자 A씨는 노동위원회로 향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 사유와 절차가 모두 정당하다고 봤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징계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징계해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1심 "해고 정당…직장 내 질서 유지에 영향"
회사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소송을 낸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회사 측은 재판 과정에서 A씨의 유죄 판결이 단체협약·취업규칙상 통상해고사유에 해당하는 만큼 징계해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징계 자체도 정당하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사정이 다른 근로자들과의 신뢰관계나 인간관계, 나아가 직장 내 질서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K하이이엔지는 매년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해 오는 등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대처해 왔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정신적 고통도 가볍지 않아 보이고 A씨가 건전한 근무 분위기를 해쳐 기업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평가된다"고 꼬집었다.
2심 "해고 부당…통상해고여도 징계 절차 거쳐야"
중노위 측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한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판은 2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제10-3행정부(재판장 원종찬)는 해고 처분이 위법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단체협약·취업규칙에서 통상해고에 관해 아무런 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있더라도 징계사유로 통상해고를 하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징계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라며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해당 통상해고사유의 일부에 관해 별도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징계절차를 생략하고 징계사유로 통상해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형사판결 확정은 단체협약·취업규칙상 통상해고사유와 징계사유 양쪽에 모두 해당한다"며 "형사판결 확정을 사유로 A씨를 해고할 때 통상해고의 방법을 취하더라도 징계 절차가 부가적으로 요구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가 동료 근로자들과의 신뢰관계를 손상시키고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A씨에게 변명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해고의 절차적 정당성이 없어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SK하이이엔지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주심 대법관과 재판부 배당을 마치고 12일 상고이유 등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