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란, 나라는 저금통에 동전을 꽉 채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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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34)이 다시 무대 위로 떠오른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어깨 부상 소식으로 국내외 발레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그가 오는 28일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세헤라자데'로 공식 복귀를 알렸다. 이어 4월 6일에는 '해적'의 알리로 돌아온다.




    '세헤라자데'에서 그는 관능과 에너지가 교차하는 황금 노예로 무대에 오른다. 이 역할은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남긴 전설적 레퍼토리로 남성 무용수의 신체성과 표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캐릭터다. 이어지는 '해적'의 알리는 순수한 테크닉과 폭발적인 점프를 요구하는 역할이다.

    부상이라는 시련을 거쳐 더욱 단단해진 근육과 깊어진 예술성을 장착하고 돌아온 김기민과 17일 이야기를 나눴다. 김기민은 복귀를 앞둔 설렘과 함께 자신의 몸과 음악, 그리고 춤의 본질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줬다.




    "저는 다쳤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의외의 말이다. 김기민은 "이번 공백은 저금통에 동전을 넣듯 나를 채우는 시간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에 따르면 무용수에게 부상은 2가지다. 복귀를 못하는 사람과 더 강해져서 돌아오는 사람. 그는 부상에 단 한번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써보지 않았던 근육과 어깨를 연구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물리치료사만큼 제 몸의 원리를 공부했어요. 이제는 점프 하나를 뛰어도 전보다 훨씬 섬세하고 유기적인 조화가 느껴져요. 저를 코칭하는 마린스키의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도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신기하다'고 하실 정도에요." 음악과 연극·영화에서 얻은 자극이 그의 몸 안에서 실력으로 치환된 결과다.




    김기민은 독특한 습관이 있다. 본 공연 전 무대 위에서 의상을 입고 조명을 받으며 공연처럼 하는 리허설을 꺼린다. 완벽주의자에겐 의외의 면모지만 그 바탕에는 예술가로서 순수한 고집이 서려 있다. "무대에 미리 서면, 본 공연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미리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좋은 레스토랑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처럼 저와 관객은 그렇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한 초면처럼."

    이런 태도는 28일 복귀작인 '세헤라자데'와 내달 6일 이어질 '해적'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세헤라자데는 그가 접신을 하듯 몸이 절로 움직여질 정도로, 춤추는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작품이다. 해적의 '알리'는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초기부터 그와 함께해온 상징적 캐릭터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작품이지만, 김기민에게만큼은 그날의 공기와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레퍼토리다.




    재활을 위해 머물렀던 모스크바에서 시간을 뒤로하고 연초부터 완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행복한 몰입 상태에 빠져있다. 다음달 그는 베자르 발레 로잔(BBL)의 서울 내한공연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참여한다. 전설적인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를 통해 '라 멜로디'(선율)로 선다. "지난해 11월 부상을 당하고 쉬는 도중에 볼레로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어요. 새롭게 도전하는 작품이고, 온전하게 집중해 리허설 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거든요."크고 작은 부상을 겪어온 김기민은 무용수는 쉴 때 비로소 자신의 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고 믿는다. 무대 조명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을 때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지향점도 선명해진다는 의미다. 공백기 동안 쌓은 감각은 그를 무용 생태계 전반을 고민하는 예술가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오는 4월 내한공연에서 선보일 '볼레로'를 비롯해 앞으로도 한국에 다양한 발레의 레퍼토리를 소개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무용수에게 레퍼토리가 적다는 건 생명력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 그가 직접 보고 감동한 작품들, 한국 관객들 앞에 공유해야겠다고 확신한 무대들이 더 자주 펼쳐질 예정이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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