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이후 토지 소유권 격변기에 한국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방식을 택했다.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이 밭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은 농촌의 권력 구조를 단숨에 바꿨다. ‘소농’에게도 자녀 교육을 감당할 여유가 생겼다. 논밭 대신 학교로 간 자녀들은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 토지개혁이 성장의 출발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랜드파워> 저자 마이클 앨버터스는 지난 200년간 벌어진 세계 각국의 대재편, 즉 대규모 토지 개편 시기를 탐구한다. 전쟁과 식민지 경험, 인구 압력 속에서 토지 소유 구조가 뒤집히는 순간이 사회의 경로를 갈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토지를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권력을 조직하는 기반으로 본다. 땅을 가진 집단은 생산을 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의 규칙을 만들고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보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경자유전 원칙을 바탕으로 지주의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택했다. 토지 소유가 넓게 퍼지면서 농가의 소비와 교육 투자가 늘었고, 이는 도시화와 제조업 성장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민주화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다른 경로도 있었다. 소련과 중국은 토지를 국유화하고 집단농장 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은 재분배 과정에 정치권력이 깊이 개입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경제 불안으로 이어졌다.
대재편은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작동했다. 북미에서는 유럽 정착민들이 원주민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으며 자산 격차를 고착시켰다. 캐나다는 정착민에게 농지를 배분하면서도 여성의 소유를 제한해 성별 격차를 제도화했다. ‘각국의 토지 재분배 정칙은 남성을 에스컬레이터에 태우고, 여성은 계단에 내버려두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토지 제도가 경제를 넘어 인종과 성별, 계층 간 위계를 고정시키는 장치로 작동했다. 한국 역시 경자유전이라는 원칙 아래 토지를 분산했지만, 소유권이 남성 중심으로 귀속되면서 가부장적 구조를 강화하는 측면을 남겼다.
책은 최근의 변화에도 시선을 둔다. 기후 변화가 이어지면서 경작 가능 지역이 이동하고 자원 확보 경쟁이 격화되면서,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구 감소와 농촌 고령화가 겹치며 농지의 이용 기반이 약해지는 한편 수도권에서는 제한된 토지를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토지의 역할을 재편하는 새 정책이 수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