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비행기 등 각종 기기를 조종하려면 손, 발 등을 이용해서 조이스틱, 스티어링 휠, 페달 등의 조종 전용 장치를 조작해야 한다. 머지않아 손, 발을 쓰지 않고도 각종 기기를 조종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생각만으로 컴퓨터,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뇌로 직접 기기를 조종하는 기술
인간이 자동차, 컴퓨터, 로봇 등 기기를 조종하고 기기가 각종 정보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등 인간과 기기 간에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기술을 인간-기기 인터페이스(Human-Machine Interface), HMI라고 한다. 현재 HMI 기술은 키보드, 조이스틱을 조작하거나 페달을 밟고 화면을 보는 등 손, 발, 눈 등의 신체 부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최근 손, 발 등을 이용하지 않고 뇌와 기기를 직접 연결해서 뇌의 전기적 활동으로 로봇, 컴퓨터 등의 기기를 조종하는 뇌-기기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BM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BMI는 컴퓨터, 로봇 등의 외부 기기를 뇌와 직접 연결한다는 점에서 인간-기기 간의 상호작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로도 주목받는다. 손, 발 등 신체 부위의 인지, 감각, 운동 기능을 보조하거나 강화하고, 부상이나 질환 등으로 상실한 기능을 복원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BMI의 시초는 1924년 독일의 한스 베르거가 두피에 은선(銀線)을 삽입해서 인간 뇌파를 기록한 연구라 볼 수 있다. BMI 기술 중에서 컴퓨터를 뇌와 연결한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은 1973년 미국 UCLA의 자크 비달 교수가 미국과학재단(NSF) 지원 연구에서 처음 제안했고 1977년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BMI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한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13년부터는 뇌 이니셔티브를 통해 여러 대학, 연구소를 지원하면서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BMI는 누구든 기기를 조종할 수 있게 돕는 기술
BMI의 최대 장점은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기기를 제어하는 능력을 복원해 준다는 점이다. 사지마비나 루게릭병(ALS) 환자처럼 근육을 전혀 쓸 수 없는 사람도 뇌 신호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문자를 입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사지마비 환자가 손 글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분당 90자(영문 단어 기준 18개)를 입력하는 데 성공했다. 2023년에는 또 다른 연구팀이 각각 분당 62단어와 78단어의 음성 복호화 속도를 기록하며 의사소통 복원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의료 분야 외에도 BMI는 인간의 인지, 작업 능력을 실시간 측정해서 기기와 연동시키는 기능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운전자의 졸음이나 정신적 과부하를 감지해 속도를 줄이는 등 차량 제어를 적절하게 보조하거나 군사·항공 분야에서 조종사의 인지 상태를 모니터링해서 임무 수행 능력을 보조하는 기능으로도 응용하고 있다. 나아가 뇌파 신호를 기반으로 집중력·감정·피로도를 측정하는 소비자용 저가형 BCI도 2007년 뉴로스카이(NeuroSky)의 첫 상용 제품 출시 이후 게임·교육 분야에서 꾸준히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BMI의 유망 적용 영역은 신체 거동이 어려운 사람의 의사소통 보조, 의족·의수 제어, 인지장애 치료라는 임상적 목적을 넘어 교육·게임·산업현장 모니터링, 군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BMI 중에서 특히 관심 받는 기술은 BCI이다. 가장 범용적인 기기인 컴퓨터를 연결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BCI 기술은 전극이 뇌 조직과 얼마나 가까이 위치하는가에 따라 크게 침습형(invasive), 부분 침습형(partially invasive), 비침습형(non-invasive)의 세 가지로 나뉜다. 침습형 BCI는 두개골을 열고 뇌의 회백질(grey matter)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침습형 BCI는 신호 품질이 가장 높지만 이물질에 대한 뇌의 면역 반응으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신호가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침습형 BCI의 대표 주자는 뉴럴링크(Neuralink)이다. 지름 23mm의 동전만 한 크기인 뉴럴링크의 텔레파시(Telepathy) 칩은 최대 1024개의 전극 채널을 완전 무선 방식으로 구동한다.
부분 침습형 BCI는 두개골 안에 이식되지만 뇌 조직 내부가 아닌 표면에 위치하는 방식으로 침습형보다 안전하면서도 두개골 위에서 측정하는 비침습형보다 훨씬 높은 신호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뇌 피질 표면에 얇은 전극 패드를 거미막 위에 배치하는 뇌피질전도(ECoG, Electrocorticography)로 두피 위의 뇌파보다 더 넓은 주파수 범위와 낮은 훈련 요구량, 더 높은 장기 안정성이 특징이다. 혈관 내(endovascular) BCI도 부분 침습형의 한 유형인데 두개골을 열지 않고 혈관을 통해 장치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싱크론(Synchron)의 스텐트로드(Stentrode)가 이 방식의 대표주자로 정맥(경정맥)을 통해 뇌 운동피질 인근 혈관에 그물망 형태의 전극을 배치한다.
비침습형 BCI는 두피 위에서 신호를 수집하므로 수술이 필요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두개골이 신호를 왜곡해 공간 해상도와 신호 대 잡음비가 낮은 한계를 지닌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뇌의 알파파(8~12Hz)·베타파(15~18Hz)·세타파(4~7Hz) 등 각종 뇌파를 측정해서 사용자의 의도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BCI 기술
2025년 이후 BCI를 의료, 산업 현장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일론 머스크가 2016년 창립한 뉴럴링크다. 2024년 1월 첫 인체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뉴럴링크는 첫 임상 참여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제어하고 체스를 두는 영상을 공개해서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뉴럴링크는 2025년 9월 기준으로 임상 참여자 수가 12명으로 늘었고 누적 사용 일수는 2000일, 총 사용 시간은 1만5000시간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 런던의 병원에서 영국 최초의 뉴럴링크 이식 환자가 수술 다음 날에 생각만으로 컴퓨터의 커서를 움직이는 작업에 성공했다. 2025년 8월과 9월에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병원 네트워크(University Health Network)가 경추 척수 손상 환자 2명을 대상으로 미국 외 지역 최초의 뉴럴링크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뉴럴링크는 2026년부터 이 칩의 양산 체제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상태다.
혈관 내 BCI 분야에서는 미국 스타트업 싱크론(Synchron)이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2020년 11월 환자 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스텐트로드를 통해 혈관 삽입 방식의 BCI로는 세계 최초로 문자 전송, 이메일, 쇼핑, 인터넷뱅킹을 무선으로 수행했고 2023년 1월에는 4명의 참여자 전원이 첫 1년간 심각한 부작용 없이 컴퓨터를 조작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싱크론은 2025년 말 2억 달러 규모의 대형 투자를 유치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침습형 분야에서는 신호 품질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소는 DARPA의 ‘차세대 비수술 신경기술(N3)’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4년 말 디지털 홀로그래피 기반의 고해상도 신경 기록 기법을 발표했다. 이 기법은 두피와 두개골을 통과해 뇌 활동에 따른 미세한 조직 변형을 영상으로 포착함으로써 기존 EEG 대비 공간·시간 해상도와 신호 대 잡음비를 크게 개선할 잠재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