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 ‘1억 장 시대’ 연 BTS
음원 흥행의 직관 지표는 앨범 판매량이다. BTS가 세상에 등장한 2013년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당시 K팝의 연간 실물 앨범 판매량은 826만2089장. BTS 멤버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입대한 시점인 2023년엔 이 수치가 1억1577만8266장이 됐다. 10년 만에 14배로 불었다. 이 기간 BTS는 앨범 4000여만 장을 팔아치우며 K팝 흥행의 리더가 됐다.BTS가 미국에서 성과를 낸 첫 K팝 스타는 아니다. 2009년 원더걸스가 미국 방송사를 돌며 고군분투했고, 2012년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말춤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뒤 이렇다 할 세계적인 K팝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BTS는 2017년 빌보드 핫100에 ‘DNA’를 처음 올리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MIC 드롭’이라는 곡을 같은 해 빌보드에 또 올려놓더니 2018년엔 세 곡을 진입시켰다. 급기야 2020년 곡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핫100 정상에 등극했다. 한국 음악사 최초다.

BTS는 ‘새비지 러브’ ‘라이프 고즈 온’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 등 모두 6곡을 빌보드 1위에 올려놨다. 멤버 지민과 정국이 따로 부른 곡을 포함하면 8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영국 무명 작곡가이던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BTS 곡 ‘다이너마이트’를 작곡해 돈방석에 앉았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정상급 작곡가는 미국 팝스타에게 먼저 곡을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앞다퉈 아껴둔 작품을 BTS에 주려고 한다. BTS 앨범에 실리면 ‘대박’이라는 게 검증되면서다. 선배 격인 미국 팝스타 그룹 ‘원리퍼블릭’의 리더 라이언 테더도 지난달 23일 내한 공연 중 “새 BTS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넥스트 BTS’에 탄탄해진 K팝 생태계
BTS의 입대와 함께 K팝 위기론이 찾아왔다. K팝 실물 앨범 판매량은 2024년 9328만1819장, 지난해 8638만3220장으로 1억 장에 못 미쳤다. “K팝 성장세가 꺾였다”는 비관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최근 드러난 지표를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상위 10개를 지난달 발표했다. ‘톱10’ 중 K팝 음반이 7개를 차지했다. 스트레이키즈(2위), 엔하이픈(3·4위) 등 후배들이 BTS의 빈자리를 채웠다. K팝이 넘지 못한 적수는 미국 대중문화의 근간이 된 테일러 스위프트(1위)뿐이다.세계에서 통하는 K팝의 면면도 다양해졌다. 2022년엔 빌보드 핫100에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가 BTS, 싸이, 블랙핑크 등 세 팀에 불과했다. 모두 13곡이었는데 이 중 10곡이 BTS 노래다. 지난해엔 K팝 30곡이 이 차트에 들었다. 블랙핑크, BTS, 캣츠아이, 에이티즈, 트와이스, 스트레이키즈 등 여섯 팀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도 빌보드 핫100에서 성과를 냈다. 기존 팝 문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룹 단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팬들과 SNS로 친밀하게 소통하는 BTS의 성공 문법을 벤치마킹한 세대들이 활약하며 K팝 생태계는 더 풍성해졌다.
기획사들의 사업 구조는 치밀해졌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K팝 기획사는 대형 아이돌의 컴백 여부에 따라 매출이 널뛰는 구조였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는 이 그룹의 완전체 활동이 없었음에도 지난해 매출 2조6499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독립적으로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다중 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게 주효했다. 스튜디오를 다수 거느려 여러 게임을 한꺼번에 개발하는 게임사의 사업 구조와 비슷한 방식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도 여러 아티스트를 동시에 육성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