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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공간 이야기] 무너져가는 벽돌집 앞에 줄 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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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공간 이야기] 무너져가는 벽돌집 앞에 줄 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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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건물이 핫플레이스가 되는 순간, 감성은 결국 가치가 된다."

    요즘 도시에는 조금 흥미로운 장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 건물이 아니라 낡은 건물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말의 성수동이나 문래동 골목길을 떠올려 보십시오. 페인트가 벗겨진 벽, 녹슨 철문, 덜컹거리는 창문. 한때는 낡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던 공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낡은 공장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립니다. 과거에는 단점이었던 ‘낡음’이 어느 순간 도시의 매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공간에 끌리는 걸까요.
    <h3 data-block-index="9" data-shown="false">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시간의 결</h3>부동산 시장에서 새것은 자본만 있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습니다. 유리로 둘러싸인 빌딩이나 최신식 건물은 충분한 자금과 계획만 있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됩니다. 하지만 오래된 공장의 벽이나 창고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비를 맞으며 생긴 얼룩, 사람의 손때가 묻은 문고리, 세월이 쌓인 벽돌의 질감. 이런 것들은 설계도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시간이 지나야 생기는 흔적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간의 희소성이 만들어집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새것보다, 세상에 하나뿐인 오래된 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분위기를 함께 소비하고 있습니다. 공간 브랜딩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h3 data-block-index="17" data-shown="false">감성은 어떻게 땅값이 되는가</h3>이 변화는 단순히 '분위기 좋다'는 감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감성이 매우 빠르게 경제적 가치로 전환됩니다. 그 흐름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발견
    버려진 창고나 오래된 건물에 감각적인 카페가 들어옵니다. 작은 변화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합니다.

    2단계 ? 유입
    사진과 입소문을 통해 방문객이 늘어납니다. 골목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장소로 바뀝니다.


    3단계 ? 상승
    사람이 모이면 상권이 형성됩니다. 가게가 늘어나고 동네의 이미지가 달라지면서 결국 건물의 가치와 임대료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문화가 스며든 공간은 물리적인 상태와 상관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낡은 시멘트 바닥도 이야기가 더해지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h3 data-block-index="32" data-shown="false">화려한 부활 뒤에 남는 그림자</h3>하지만 이 변화에는 항상 함께 따라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입니다. 동네가 유명해질수록 임대료는 오르고, 처음 분위기를 만들었던 작은 가게나 예술가들은 점점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공간의 개성은 점점 약해집니다. 처음에는 특별했던 골목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권과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다시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도시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변화합니다.

    낡은 것에서 보석을 찾는 눈



    한때는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발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도시가 던지는 질문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무엇을 새로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 폐공장이 미술관이 되고, 오래된 창고가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간의 가치는 새로움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 쌓인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비로소 깊이가 생깁니다.

    투자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외관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과 그 안을 채우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동네에 있는 낡은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곳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젠가 도시의 다음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명재환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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