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에는 상담을 하고, 재판에 나가고, 퇴근 후 아이들과 시간을 잠깐 보낸 후엔 글을 써요. 최근엔 드라마 대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주말에도 계속 글을 씁니다."
낮에는 치열한 이혼 법정에서 의뢰인의 고통을 법률적 문장으로 정제해내는 15년 차 이혼전문 변호사, 밤 10시 두 아들을 재우고 난 후엔 작가로 살아간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하고 있다"는 최유나 변호사의 일상이다. 최 변호사가 하루에 20분씩, 그러다 밤 잠을 줄여가며 쓴 원고는 웹툰과 드라마가 됐다. 배우 장나라에게 '연기대상' 트로피를 안겨준 SBS '굿 파트너'는 최유나 변호사가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이다.
최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이자 드라마 작가다. 또한 세 권의 책을 쓴 저자,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그에게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하느냐"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냥 해야 해서 했다"며 "대단한 동기나 열정이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그냥"이라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그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눈물로 보낸 30대 초반, "생존 위해 다 내려놨죠"
최 변호사는 자신의 저서 '마일리지 아워'를 통해 하루를 3개로 쪼개 쓰는 시간관리법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사고력이 필요 하지 않는 일은 바로바로 답하고 처리한다"며 "'뭘 입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옷도 주름이 가지 않는 상의, 검은색 재킷과 슬렉스로 갖춰 입는다"고 밝혔다. 이런 선택과 집중의 생활 비법은 그가 눈물과 치열함으로 보낸 30대 초반의 시간으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최 변호사 스스로 "가혹했다"고 했던 그 시기, 그는 결혼과 변호사 사무실 개업, 첫 아이의 탄생과 아버지의 죽음까지 인생의 큰 이벤트들을 연이어 겪었다. 인생의 책임이 몰리면서 몰리자 "생존을 위해 일상의 욕심을 모두 걷어냈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거나 맥주 한잔하는 즐거움은 물론 옷 사고 머리 하는 것까지 다 포기했어요. 머리 염색에 드는 시간도 사치라 10년 넘게 염색을 안 했을 정도예요. 32세부터 37세까지 5년 동안은 정말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몸이 너무 안 좋아 병원 예약을 해도 갈 시간이 없어 못 가곤 했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하루살이처럼 버텼습니다."
그런 고립된 시간 속에서 그는 '닥치는 대로' 생존 전략을 짰다.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며느라기' 같은 만화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로펌을 홍보할 돈 안 드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 창구"라는 생각에 웹툰을 시작했고, 동시에 드라마 작법서도 혼자 파고들었다. 하지만 로펌 운영과 육아로 보낸 5년 동안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이 길이 맞나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월급과 사무실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대표이자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움직이게 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최 변호사의 일과는 철저한 루틴 속에 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변호사 업무를 본다. "30년 가까이 고시생처럼 살고 있다"는 그는 일상의 자잘한 결정들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메일 확인이나 예약처럼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은 3초 안에 바로 답하고 결정해버립니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 본업과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오히려 상대방도 '성의 없다'가 아니라 '빨리 결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주시고요. 예전에는 이런 루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시간을 통해 이룬 성취들로 다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축배 대신 부족함 찾아…'성장했다'라는 감각이 주는 행복
동시에 그는 이혼 변호사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왔다. 2012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혼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그는 "드라마 속 이혼 변호사들이 남의 고통으로 돈을 버는 저속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안타까웠다"며 "'굿 파트너'는 진짜 이혼 변호사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쓴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최 변호사는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히 그는 상담을 했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너무 신나버리면 그다음이 없을까 봐 스스로를 절제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찬사보다는 실수나 보완할 점들이 더 눈에 보인다"며 "오픈채팅방 반응을 보면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자책하곤 했다"고 털어 놓았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 오픈채팅방 반응을 다 봅니다. 제가 쓴 모든 구절의 의도가 기억나기에 시청자 반응과 대조하며 부족했던 점을 찾아요. 악플에 시달리며 힘들 때도 많고 부족한 게 계속 보여서 괴롭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경제적인 이득이나 성과보다도 '예전에는 이만큼 걸리던 대본 작업을 이제는 이만큼 단축했다'는 식의 능숙해진 감각, 즉 내가 더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최 변호사는 현재 '굿파트너' 시즌2 대본 작업 중이다. 집필 과정은 시즌1과 마찬가지로 오롯이 혼자서 하고 있다. 전문 작가들도 보조작가들과 협업을 하는 상황이지만, 최 변호사는 "협업도 뭘 알아야 가능한 것"이라며 "어차피 법조물이라 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제가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엄마는 변호사 겸 작가…아이들의 자랑이 원동력"
하루를 3개로 쪼개 살 정도로 매일매일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최 변호사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두 아들에 대한 육아였다. 최 변호사는 "이런 삶을 버티고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두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첫째 아들은 엄마가 변호사이면서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 것을 누구보다 뿌듯해하며 학교에서 자랑하고 다닌다"고.
"제가 아이들 숙제나 이런 것들을 세세히 봐주진 못해요. 그런 엄마를 좋아해 주니 아이들에게 고맙고요. 소녀 최유나가 없어지고 엄마 최유나가 되면서 훨씬 단단해졌어요. 예전에는 멘탈이 약했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니 정말 잘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잘한 것들도 쓰지 않게 됐어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두 아이가 현관문 앞에 서서 저를 반겨주는데, 그 순간이 정말 너무 행복해요. 제 인생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치열한 30대를 거처 빛나는 40대를 보내고 있는 최 변호사는 "50대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꿈도 전했다.
"예전에는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산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포기했던 시간 덕분에 지금의 성취를 얻었고, 그 모든 것이 보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저 매일의 약속을 지키며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쌓아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박상경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