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단순한 봉사 차원을 넘어 경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본을 공급해 미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재난 대응 체계를 혁신하는 등 사회공헌 방식도 한층 고도화하는 추세다. 에너지와 교통 분야 공공기관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자본공급을 넘어 기업의 ‘평생 동반자’로
한국투자금융그룹은 초기 창업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는 ‘최초 기관 투자자’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을 통한 사회공헌’을 목표로 설립된 자회사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AC)와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와 창업 초기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시너지 클럽’ 워크숍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퓨리오사AI, 바이오디자인랩, 에너자이 등 인공지능과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 40여 곳이 참여해 기술 멘토링과 글로벌 공동 영업 지원을 받았다.한국투자금융그룹은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사후 관리까지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에 42억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진행했다. 이들 기업이 35건의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 정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11건이 선정되도록 뒷받침했다. 창업 초기 단계부터 성장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전 생애 주기를 함께하며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롯데그룹은 영유아부터 청년, 군 장병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7년 ‘엄마가 편안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mom편한’ 사회공헌 사업이 대표적이다. 어린이들의 안전한 놀이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mom편한 놀이터’ 사업은 지난달까지 전국에 32호점이 조성됐다. 방과 후 돌봄 기관인 지역아동센터의 환경을 개선하는 ‘mom편한 꿈다락’ 사업은 전국 15개 시도에서 총 100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군 장병을 위한 ‘청춘책방’ 사업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2016년 시작된 이 사업은 장병이 복무 기간에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독서 카페 형태의 병영 도서관 조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자동차 폐시트로 소파 만들어 기부
한국가스공사는 국내 최초로 천연가스 제품에 대한 ‘환경성적표지’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성적표지는 원료 채취부터 생산, 수송,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계량화해 공개하는 제도다. 기업 단위의 환경 정보는 비교적 공개가 활발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제품 단위 환경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했다.가스공사는 이를 위해 10개 내부 부서와 33개 공급사가 참여하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약 1만6000개에 달하는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탄소발자국을 포함한 7개 범주의 환경 영향을 산출했다. 가스공사는 환경성적표지 인증이 완료되면 천연가스가 다른 화석연료보다 탄소 배출이 적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가 자사의 환경 성과를 관리하고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를 사회적 가치 창출로 전환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캠핑카나 교통약자 이동 차량 튜닝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시트를 ‘새활용(업사이클링)’해 소파로 제작한 뒤 장애인 시설과 취약계층 시설에 전달하는 ‘TS소파쏘굿’ 사업이 대표적이다. 교통안전공단은 국내 모빌리티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중소기업 13곳과 함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를 방문해 구매 상담 68건을 진행하고, 현장 계약액 23만달러 규모의 수출 성과를 거두는 등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을 확대했다.
◇농협, 재해 대응 체계 전면 재설계
농협중앙회는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농업과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월 영남지역 산불을 시작으로 5~6월 이상 저온과 우박, 7~9월 호우와 폭염, 12월 병충해까지 자연재해가 연이어 일어났다. 농협중앙회는 농가 경영의 조기 안정을 위해 무이자 재해자금 8000억원(수혜이익 218억원), 범농협 성금 110억원, 이재민 생활 안정 지원 43억원 등을 투입했다.농업 재해 대응 체계도 ‘예방·복구·회복’ 전 과정을 아우르는 구조로 전면 재설계했다. 올해는 1조원 규모의 무이자 재해자금을 편성해 피해 농가의 조기 경영 안정을 지원하고, 디지털 기반의 ‘모바일 재해 발생 보고 시스템’을 도입해 피해 집계 시간을 단축했다. 위험 징후가 포착되면 농업인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사전 대응 기능도 강화했다.
대학 사회 역시 지역 밀착형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숙명여대는 서울 용산구 내 기업 및 기관들과 함께 구성한 민관학 연합 봉사체 ‘용산드래곤즈’를 통해 아동 돌봄과 도시 환경 개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북 안동 산불 피해 이재민에게 생필품 키트를 지원하고,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조경 공간을 조성하는 등 현장 중심의 봉사 활동을 벌였다.
도심 녹지 확충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숙명여대는 서울시가 주최한 ‘봄철 동행매력정원 만들기 행사’에 참여해 서울 보라매공원에 관목과 초본을 심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을 조성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학이 지역사회와 협력해 공공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