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분양한 한 지식산업센터는 입주 전부터 계약금 포기 매물이 나왔고, 역세권이 아닌 외곽 지역에서는 계약금의 2배를 포기하겠다는 매물도 수두룩했죠." (서울 금천구 A 부동산 관계자)2010년대 말 수익형 부동산으로 인기를 끈 지식산업센터의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지식산업센터는 도심과 신도시 등에 중소·중견기업의 공장과 사무실이 모여 입주하는 일종의 '아파트형 공장'이다. 한때 '수익형 부동산의 꽃'으로 주목받았으나, 최근엔 준공 후에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빈 채 방치된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공실인 지식산업센터의 활용도를 올리고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식산업센터의 주거용 전환을 허용하는 특별법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식산업센터의 공실 사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불 보장제까지 등장"…멈춰버린 가산디지털단지
13일 찾은 서울 지식산업센터 최대 밀집지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지식산업단지 '가산 3차 SK V1 센터' 1층 상가 곳곳엔 임대 문의 전단이 빼곡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 인근 한 지식산업센터에서는 전용 86㎡ 매물이 5억원이 넘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상태로 시장에 나오기도 했다. 인근 B 공인중개사 사무실 외벽에는 최초로 '환불 보장제'를 시행한다는 안내문까지 내걸렸다. 분양 후 45일 이내 계약을 해지하면 계약금을 100% 돌려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분양 한파에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유인책이지만, 매수 문의는 뚝 끊겼다.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분양가가 워낙 비싸 잔금을 치르지 못하고 포기하는 수분양자가 태반"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단지 사정도 마찬가지다. 인근 우림라이온스밸리 등 기존 지식산업센터들 역시 층마다 2~5개씩 사무실이 비어 있다. 건물 인근 C 부동산 관계자는 "2018년을 기점으로 대기업들이 빠져나가자 하청업체들의 연쇄 이탈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현장 분위기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17일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 거래량은 3030건으로 전년 대비 22.1%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 금액 역시 1조2827억원에 그치며 전년보다 23.7%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지역 거래량(60건)과 거래 금액(4797억원) 역시 각각 20%에 가까운 감소 폭을 기록했다. 3.3㎡당 평균 가격은 2501만원으로 직전해(2762만원) 대비 9% 하락했다.
공실과 미분양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부동산개발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전체 공실률은 55%, 평균 미분양률은 40%에 달했다.이 같은 사태의 원인으로 수급 불균형이 지목됐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공격적 인허가로 공급 과잉이 누적된 상황에서 물량을 소화할 전문 과학기술 서비스업 창업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에 따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 난항과 사업비 부담까지 겹치며 시장 전체가 침체됐다는 게 이 보고서의 내용이다.
주거용 전환 특별법 카드 꺼낸 정부…구조적 한계 지적도
국토교통부는 올해 상반기 중 공실률이 높은 지식산업센터와 상가 등을 주거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9·7 주택 공급 대책'에서 발표한 도심 내 비아파트 공급 확대 방침의 후속 조치다.다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용도 전환이 지식산업센터의 공실 해소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사무실·공장 용도로 설계된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하기엔 구조적 한계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B 부동산 관계자는 "바닥난방도 안 되고 배수 처리 자체가 안 돼서 어렵다"고 말했다. C 부동산 관계자 역시 "새로 짓는 것들은 모르겠지만 기존에 있는 것들은 도시가스 등의 문제로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용도 전환을 통한 지식산업센터 공실률 해소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지식산업센터를 개조하더라도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거 환경을 맞추기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박사는 "주택 수요자들은 대단지 신축 아파트를 선호한다"며 "빌라와 오피스텔 가격마저 크게 하락한 마당에 용도를 전환한 지식산업센터 매물이 시장의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원철 연세대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 책임교수는 수요와의 괴리뿐 아니라 개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걸림돌로 꼽았다. 그는 "전면적인 주거형 개조 시 호실마다 개별 화장실과 배관을 새로 설치해야 해 비용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안으로는 리모델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유주거와 공유숙박 형태를 제안했다. 최 교수는 "각 호실에 배관을 새로 넣는 대신, 방만 따로 쓰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같이 쓰는 형태로 칸만 나누면 막대한 개조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획일적인 주거 전환보다는 지역 수요에 맞춘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마다 청년 주거 공간이 모자란 곳이 있고 외국인 관광객용 숙소가 부족한 곳이 다르다"며 "건물 전체를 뜯어고치기보다 기존 지식산업센터 기능을 유지하면서 일부만 공유주거·숙박으로 섞어 쓸 수 있도록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세밀한 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