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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연금, 개정상법의 집행관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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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연금, 개정상법의 집행관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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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선언했다. 이사 수 조정, 이사 임기 유연화, 전자주총 배제 등 상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기업의 정관 변경 안건에 원칙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분에서지만, 기금 적립금(운용자산) 1458조원(2025년 말 기준)의 국가 자본을 동원해 민간 기업 경영권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행위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개’ 범위를 기존 지분 10% 이상에서 5% 이상으로 확대했다. 2024년 말 기준 국민연금은 국내 271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고,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35곳(CEO스코어)에 이른다. 개정 상법이 적용될 자산총액 2조원 이상 회사는 2025년 기준 200개가 넘는다.


    이사 수까지 간섭하거나 임기 유연화를 반대하는 등 대규모 상장사의 정관 규정을 단일 공공기관이 일괄 통제하는 이 그림이 시장 원리와 부합하는지 냉정히 물어야 한다. 특정 구조의 ‘악용 가능성’만으로 ‘일반주주 보호 장치 우회’라는 프레임을 씌워 구조 변경 시도에 반대표를 행사하는 것은 기업별 상황을 무시한 획일적 기준의 강요이며,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무력화하는 처사다. 기업이 처한 산업 환경과 경영 전략에 따라 이사회 규모를 조정하거나 운영 방식을 최적화하는 것은 경영 판단의 영역이다. 지금까지 방만하게 운영된 이사회 규모를 재점검해 적정 인원으로 재구성하려는 기업의 경영합리화 시도마저 탈법 행위로 오인될 위험이 있다. 법원이나 상법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아니라 국민연금이 상법 개정의 취지를 해석하고 집행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것도 국민연금의 치명적 자만이다.

    이사 임기 유연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이사의 장기 재직(9~12년) 시 재검토를 권고하며, 이런 권고는 “따르지 않을 경우 설명하라(comply or explain)”는 정도다. 모든 임원의 임기가 동시에 시작되고 끝나는 이사회는 그 연속성 면에서 최악의 구조다.


    대만이 2011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자 기업들은 이사를 줄였다. 이에 대만 당국이 ‘이사 수 하한’ 등의 규제를 도입했다. 증권거래법 제26조의 3 제1항에 상장사 이사회는 5인 이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위반 시에는 과태료, 감리종목 지정 심지어는 상장폐지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기업은 경영권 방어에 에너지를 쏟고, 연기금은 수익률 제고라는 본업 대신 기업과의 ‘정관 전쟁’에 매몰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우리 국민연금은 지금 대만의 이런 졸렬한 행보를 답습하겠다는 것인가.

    수익률 제고가 목적이라면 수치를 봐야 한다. 2025년 국민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18.8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연간 운용수익금만 해도 약 231조6000억원이다. 수익률이 이처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지금 당장 기업 지배구조 개입을 급진적으로 확대할 긴박한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연금은 2160만 가입자의 노후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기관이다. 수탁자(受託者)는 위탁자의 자산을 충실히 관리하는 것이 그 본질적 역할이지, 기업 경영의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심판자가 아니다. 한국 주요 기업의 정관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수탁자의 역할을 넘어선 월권이다. 국민연금은 스스로를 개정 상법의 집행관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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