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6일 주간 거래에서 장중 1500원을 돌파했다. 역외 거래가 아닌 정규장에서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후 처음이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공포가 확산하자 안전자산인 달러가 강세를 보인 영향이다. 외환당국은 적절한 시점에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설 수 있다면서도 개입을 망설이고 있다. 유가가 더 오르면 환율이 1550원대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구두 개입 카드나 외환보유액을 소진할 시점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S공포에 달러 강세…외환당국 관망
1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3.8원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1497.5원에 낮 시간대 거래를 마쳤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10일(1511.5원) 후 가장 높았다. 이날 환율은 7.3원 오른 1501원으로 출발하며 2009년 3월 12일(장중 1500원) 후 처음으로 주간 거래에서 1500원을 넘어섰다. 이후 상승폭을 일부 반납하며 1500원 아래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환율은 국제 유가 흐름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지난 9일 환율은 1495.5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후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로 내려가자 환율도 10~11일 이틀에 걸쳐 내림세를 보이며 1460원대로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의 군사 시설을 공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자 이날 국제 유가도 다시 100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1970년대 원유 공급 충격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도 뛰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90대에서 맴돌았지만 이달 13일(100.1) 100을 돌파했고 이날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날 외환당국은 별도의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환시장 딜러는 “중동 리스크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뿐 아니라 주요국 통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나타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직접 개입이나 구두 개입 효과가 크지 않고, 외환보유액만 소진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관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환당국은 다양한 시장 안정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구두 개입과 함께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구축 등 여러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1550원까지 뛸 수도”
다음달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WGBI 편입으로 한국 국채를 매입하려는 외국인 투자금 500억~600억달러가량이 국내에 유입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수요가 늘어 원화 가치가 반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는 “외국인 투자자는 대부분 환헤지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달러를 팔고 원화를 매수하는 자금은 예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며 “WGBI 편입 이후 약 8개월 동안 국내로 들어오는 실질적인 자금 유입 규모는 월 20억~30억달러 수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중동 사태와 국제 유가 흐름이 향후 환율의 방향성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1500원 수준의 환율은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면서도 “전쟁이 장기화하고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 더 상승할 경우 환율이 155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심성미/남정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