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우주 분야 협력 강화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6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KAI 지분 4.41%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한화시스템이 최근 사들인 KAI 지분 0.58%를 더하면 한화그룹이 보유한 지분은 4.99%(486만4000주)로 늘어난다. 금액으로는 이날 종가(19만1200원) 기준 9299억원이 넘는다.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매입한 건 201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을 매각한 후 7년여 만이다. 당시 KAI 민영화 동력이 약화되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 지분 5.99%(584만7511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 매입을 단순한 재무 투자라기보다 장기적인 항공우주 사업 구상 속에 이뤄진 전략적 행보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 유일한 항공기 제작사인 KAI 지분을 확보하면 한화그룹이 구축해 온 방산 사업 구조가 더 확장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그룹은 국내 방위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사업 영역을 넓혀 왔다. 지상 무기체계를 담당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미사일과 전자 장비, 레이더 등을 담당하는 한화시스템을 묶어 방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조선 방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2023년 한화오션까지 인수하며 ‘육·해·공’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했다.
항공우주 플랫폼 분야에서는 아직 핵심 기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전투기(KF-21)와 군용 항공기(수리온 등)를 개발·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KAI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항공기 엔진과 우주 발사체 등 핵심 시스템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한화그룹의 KAI 지분 인수로 경쟁사인 두 회사는 파트너 관계를 다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지난달 5일 ‘K-방산 글로벌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 핵심 사업 공동 협력 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배타적이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두 회사는 무인기 공동개발 및 수출 추진, 국산 엔진 탑재 항공기 개발 및 공동마케팅, 글로벌 상업 우주시장 진출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 지분 매입에 대해 “중장기 전략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미래 항공우주 사업 협력을 확대하고, 방산·우주항공 분야 글로벌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추가 지분 인수로 경영권 행사하나
업계에서는 이 전략의 중심에 김 부회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회장은 방산과 에너지, 우주 사업을 중심으로 한화그룹의 미래 사업 구조를 설계해 온 인물로 평가된다. 재계에서는 방산과 항공우주산업이 사실상 그의 핵심 경영 무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글로벌 우주시장은 민간 중심의 ‘뉴 스페이스’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 기업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우주산업 생태계 고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KAI와 발사체, 위성, 데이터 분석 등에서 협력해 저궤도 위성부터 중·대형 위성까지 포함하는 종합 우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이 장기적으로 KAI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행사할지도 관심사다. 수출입은행이 KAI 민영화 차원에서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경우 한화그룹은 대한항공 등과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업체인 한화와 KAI의 협력이 본격화하면 국내 방산·우주항공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한화그룹 계열사가 추가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