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549.85

  • 62.61
  • 1.14%
코스닥

1,138.29

  • 14.67
  • 1.27%
1/2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야닉과 필라델피아의 부활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야닉과 필라델피아의 부활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1908년, 구스타프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2번 <부활> 미국 초연을 직접 지휘했던 카네기홀. 1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10일, 야닉 네제 세갱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뉴욕을 찾았다.

    이번 무대는 카네기홀의 기획공연인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Great American Orchestras)’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매 시즌 카네기홀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선보이며 뉴욕 관객들과 긴밀하게 호흡해 왔다. 특히 이날 공연은 음악감독 야닉 네제 세갱이 2026-27 시즌 카네기홀에서 빈 필하모닉 등과 함께 완성할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의 방향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활>은 두 명의 여성 솔리스트와 대규모 합창단, 확장된 관현악 편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말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구조적 방대함은 물론, 고난을 통과해 환희의 합창으로 마무리되는 서사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다. 성악과 기악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같은 궤적 위에 놓여 있다. 야닉 네제 세갱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이번 연주에서 불필요한 자의적 감정 과잉이나 거대한 음량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향이 아닌 치밀하고 정교한 스타일을 구현하는 데 중심을 뒀다.


    천둥 같은 현악 저음부의 도입부가 울리자 이날 연주의 성격이 곧바로 드러났다.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것은 유려한 소리의 질감이었다. 각 파트 명사수들의 개인기를 앞세워 입체적인 연주를 펼쳐가는 악단이 있는 반면, 필라델피아는 개인의 역량 대신 악단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음향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다.

    과거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가 반세기에 걸쳐 일구어낸 악단의 전통,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벨벳 톤이 이날 역시 재현됐다. 마치 라이브 공연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과정을 끝낸 완성품 CD를 듣는 듯, 튀는 섹션이나 도드라지는 소리는 없었다.





    이러한 앙상블은 무대 위 연주자들이 자신이 직관적으로 듣는 소리의 크기와 본능을 포기하고, 오직 지휘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만 도달할 수 있다. 말러 특유의 감정적 분출 대신, 악단의 윤기 있는 사운드 위에 야닉의 컨트롤이 덧입혀진 결과물이었다. 작년 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첼리스트 마이클 캐츠(Michael Katz) 역시 뉴욕 필하모닉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며 필라델피아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언급했다.


    이날 연주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의 시각적 연출이었다. 소프라노 잉 팡(Ying Fang)과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Joyce DiDonato)는 통상적인 위치가 아니라 하프가 위치한 무대 왼쪽 후방에 자리했다.

    묵묵히 대기하던 디도나토가 긴 침묵을 깨고 4악장 '근원의 빛(Urlicht)'에서 노래를 시작했을 때, 그의 소리는 무대 중앙에서가 아닌 먼 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환청처럼 다가와 모두를 위로했다. 관객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을 찾아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만든 이 연출은 텍스트의 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특히 투명한 오보에 선율과 디도나토의 노래가 어우러지던 부분은 이날 연주의 백미였다.




    연주 시간이 80분에 달하고 200여 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작인 만큼, 미세한 균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객석에서 들리는 오프 스테이지 밴드의 존재감이 다소 부족했고, 트럼펫과 호른에서는 찰나의 흔들림도 감지됐다. 2악장 초반 현악기군이 피아니시시모(ppp)로 지속하는 셋잇단음표 구간에서는 음형의 선명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5악장에서 스네어 드럼과 팀파니가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크레셴도 끝부분이 금관의 도입부와 미세하게 엇갈린 타격점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 흠결보다, 오케스트라가 곡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오히려 흥미로웠다. 작품 곳곳에 걸쳐 터져 나와야 할 정점의 순간들은 약속된 경계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악단의 화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두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내부의 질서를 따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앞선 70분간 유지된 경계선은 마지막 악장의 핵심 텍스트,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Sterben werd' ich, um zu leben!)”에 이르러 비로소 당위를 얻었다. 개인기를 뒤로하고 전체 사운드의 균형과 밀도에 집중해 온 그들은 응축한 에너지를 쏟아냈다. 피날레의 폭발은 단순히 압도적인 음량 때문만이 아니었다. 치밀한 인내가 선사하는 역설적인 카타르시스이자, 악단의 DNA를 증명한 정교한 해방이었다.

    연주 내내 정숙함을 유지했던 객석은 마지막 음표가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공연이 끝나면 미련 없이 코트를 챙겨 떠나는 '쿨한' 뉴욕 관객들은 앙코르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보냈다. 이 낯설고도 뜨거운 미련이야말로 폭발 대신 자기 통제를 택한 필라델피아의 ‘부활’이 남긴 여운의 깊이를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뉴욕=김동민 지휘자·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