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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알 상속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가 남긴 유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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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알 상속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가 남긴 유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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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영화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세자르 영화상에서 2025년 개봉작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가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았고, 영화는 세자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특히 핵심 인물을 연기한 로랑 라피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제 사건 '베탕쿠르 스캔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eal) 창립자의 상속녀이자 최대 주주였던 릴리안 베탕쿠르(Liliane Bettencourt), 또 다른 한 명은 사진작가이자 사교계 인물로 유명했던 프랑수아 마리 바니에(Francois-Marie Banier)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니에가 잡지 인터뷰에 실릴 베탕쿠르의 초상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예술적 교류를 나누며 친분을 이어갔다. 베탕쿠르는 바니에의 예술 활동을 후원하며 다양한 선물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 선물의 규모였다. 베탕쿠르 스캔들은 베탕쿠르의 딸 프랑수와즈가 “어머니가 약탈자들에게 둘러싸였다”며 바니에를 고발하며 시작되었고,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미쳤다고 말하며 바니에 편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니에가 받은 재산이 수억 유로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혹은 더욱 커졌다. 고령이었던 베탕쿠르가 과연 이런 거액의 재산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증여한 것인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바니에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진정한 우정이었으며, 자신이 받은 모든 선물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베탕쿠르 저택의 집사가 몰래 녹음한 대화 파일이었다. 약 21시간 분량의 녹음이 공개되자 사건은 단순한 재산 분쟁을 넘어 프랑스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정치 스캔들로 확대됐다.

    긴 조사와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결국 바니에를 유산 상속인으로 지정했던 유언 조항을 취소했다. 프랑스를 뒤흔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14살에 로레알에서 인턴을 시작한 릴리안


    1922년 10월 21일, 릴리안 슈엘러(Liliane Schueller)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사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도미니크 수녀회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그녀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로레알의 창립자 외젠 슈엘러(Eugene Schueller)의 외동딸이었다. 14세 때 인턴십을 계기로 이미 번창하고 있던 가족 기업에서 일하며 사업 세계를 가까이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1957년 그녀가 35세였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릴리안은 자연스럽게 회사를 상속받았고 로레알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비록 사업 자체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비교적 크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룹의 전략적 결정에 참여했으며 1974년 네슬레(Nestle)가 회사 지분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년 전직 장관 앙드레 베탕쿠르(Andre Bettencourt)와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라 릴리안 베탕쿠르가 되었다. 외동딸로 자라 늘 외로웠던 그녀는 1953년 딸 프랑수아즈를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사교적이고 화려한 어머니와 달리, 지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가였던 딸을 향해 그는 “차가운 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7년 94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베탕쿠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약 350억 유로로 추산된 재산은 외동딸 프랑수아즈와 두 손자 장 빅토르와 니콜라에게 나누어 상속되었다.

    베탕쿠르 슈엘러 재단

    베탕쿠르는 로레알 그룹에서 연구 개발이 최우선 과제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정신 아래 1987년 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슈엘러-베탕쿠르 재단(Fondation Schueller-Bettencourt)을 설립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재단은 재정 규모 면에서 프랑스 최대의 가족 재단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매년 수천만 유로가 연구, 문화, 사회 프로젝트에 지원된다. 기업을 통해 축적된 막대한 부의 일부를 사회와 공익을 위해 환원하는, 프랑스 대기업의 자선 활동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재단은 생명과학 연구나 사회적 연대 활동에도 많은 지원을 하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분야는 화려한 현대미술 시장이 아니라 장인의 손에서 탄생하는 예술이다. 도자기, 유리 공예, 자수, 목공 등 전통 기술은 빠르게 돌아가는 산업 사회 속에서 점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재단은 그런 장인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며 프랑스 공예 문화의 숨은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릴리안 베탕쿠르 상

    재단이 주관하는 '릴리안 베탕쿠르 손의 지혜 상(Prix Liliane Bettencourt pour l’intelligence de la main)'은 이름부터 인상적이다. 이 상이 말하는 '손'은 단순한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험과 창의성,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장인 정신을 뜻한다. 도자기, 자수, 목공, 보석 공예까지, 작품 하나하나에 장인의 노력과 세월이 담겨 있다. 베탕쿠르가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진짜 가치 있는 부는 돈이 아니라, 손과 마음이 만든 창작물에 있다”. 올해로 26회를 맞은 이 상은 여전히 그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장인과 디자이너의 협업을 평가하는 '대화(Dialogues) 상'은 장식 석고 장인인 엘로디 미쇼(Elodie Michaud)와 디자이너 레베카 페자르(Rebecca Fezard)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이 선보인 작품 '투포(Tufo)' 테이블은 장인 정신과 친환경 디자인이 만난 독특한 작품이다. 테이블은 투페(tuffeau)라고 불리는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서 채석한 석회암 덩어리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약 1만5천 톤의 가죽 자투리가 버려진다. 두 작가는 이 가죽 폐기물을 활용해 'Leatherstone'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가죽 조각을 분쇄하고 질감과 밀도를 더하는 성분과 방수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식물성 오일을 함께 섞어 약 30분 기다리면 단단한 소재로 굳는다. 이렇게 얻어진 소재는 돌이나 광물처럼 보이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 소재와 제작 방식을 개발하는 데만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소재는 가구나 오브제 디자인에 활용되며 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바꾸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릴리안 베탕쿠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기억되어 왔다. 그녀의 삶에는 스캔들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다. 장인의 손을 지키는 이야기이다. 거대한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 예술과 기술, 그리고 장인의 시간 속으로 다시 흘러 들어가는 순간이다. 돈은 세대를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손끝에서 태어난 기술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남는 진짜 부일지도 모른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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