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부가 이른바 ‘노동약자지원법’을 통해 추진 중인 ‘근로자 추정제’는 우리 소송법상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는 파격적인 시도다.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 급증하는 새로운 고용 형태 속에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적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나, 법리적 관점에서 이 제도가 가져올 구조적 부작용과 산업 현장의 혼란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준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특정 계층을 보호하는 수단을 넘어, 자칫 ‘계약의 자유’라는 법적 기초와 기업의 인사 관리 시스템 사이의 균형을 위태롭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안에서 법리적으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은 입증 책임의 전환이 가져올 실무적 부담의 적정성 문제다. 소송법의 원칙상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정제는 종사자가 제시하는 몇 가지 외관적 지표만으로 사용자가 반증의 책임을 온전히 떠안게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알고리즘을 활용한 업무 배정이나 평점 관리 체계를 근로자성 인정의 기준 중 하나인 '실질적 지휘·감독'의 주요 근거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현대 산업의 기술적 효율성과 법률적 종속성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이는 자칫 기업으로 하여금 존재하지 않는 지휘·감독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도한 입증의 굴레를 지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입증 책임의 전환은 실무적으로 전략적 소송의 양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자성이 추정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종사자는 강력한 협상력을 갖게 되며, 이는 퇴직금이나 각종 수당의 소급분을 목적으로 한 기획성 제소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은 승소 가능성과 무관하게 막대한 입증 부담과 행정적 비용, 나아가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를 우려하여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합리적 이유 없는 합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결국 고용 형태의 경직화와 인적 자원 운용의 유연성 저하로 귀결되어, 국가 전체의 노동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경제적 의존도를 근로자성의 핵심 지표로 삼으려는 움직임 역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정 사업체로부터 얻는 수입 비중이 높다는 경제적 사실이 곧바로 법률상 ‘인적 종속성’으로 치환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 프리랜서나 특화된 기술을 가진 1인 사업자조차 전속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로 추정된다면, 이는 사적 자치의 영역을 공법적 규제로 과도하게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입법화될 경우, 기업들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유연한 외부 인력 활용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아웃소싱을 택하거나 직접 고용을 최소화하는 등 고용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산업 현장의 혁신 저해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활용한 실시간 업무 매칭은 플랫폼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를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간주하는 입법이 충분한 완충 장치 없이 진행된다면, 국내 기업들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기술 고도화를 주저하거나 인적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기형적인 서비스 모델을 검토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국내 기업들의 손발을 묶는 결과가 될 것이며, 노동자를 보호하려던 취지가 오히려 일자리 창출의 토대인 플랫폼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실효성 있는 입법을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했으면 한다.
첫째, 모든 업무 위탁 계약에 추정제를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종속성이 명백히 의심되는 특정 직종과 일정 수준 이하의 저소득 계층으로 그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입법 기술적으로 '네거티브 방식'보다는 보호가 시급한 대상을 명시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둘째, 정부의 표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성실히 준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추정의 효력을 배제하거나 입증 책임을 다시 완화해 주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규정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셋째, 기술적 배분인 알고리즘 배정과 법률상 지휘·감독을 명확히 구분하는 세부 지표의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근로 과정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디지털 특화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사회보험 등 안전망 확충이라는 정책 목표와 근로기준법상 모든 권리를 일괄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노동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이지, 기업을 소송의 굴레에 가두는 법적 장치는 아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정부는 입법 속도에 매몰되기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기업이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노동 개혁은 제도적 강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에 맞는 새로운 계약 거버넌스를 정립하고 노사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진홍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