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법이 시행되자 형이 확정된 범죄자들도 헌재 심판을 받겠다며 나서고 있다. 법원의 재판으로 기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는 취지와 달리 오히려 가해자들이 인권을 주장하며 피해자를 또다시 법정 공방에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접수된 재판소원 심판청구 사건은 총 36건이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한 달에 500건이 넘는 재판소원이 들어오게 된다.
재판소원 제도는 기존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던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헌재 심리 결과 법원의 재판이 헌법에 어긋난 경우 헌재는 해당 재판을 취소하고, 법원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
문제는 "사법권 작용도 헌법적 통제 대상에 포함해 촘촘한 기본권 보장 체계를 구축한다"는 헌재의 목표와 달리 재판소원 제도가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해 분쟁의 장기화로 이어지거나 '강자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단 지점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법원 판결을 확정받은 당사자가 너도나도 재판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나서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사건이 폭증하리란 우려도 있다.
이 중 일부는 형사사건으로 유죄를 확정받은 피고인들이 제기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대출 사기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은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소원 청구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도 재판소원 청구를 예고했다. 구제역의 법률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는 지난 1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법원이 구제역의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 피고인 방어권 등 헌법상 6개 조항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증거능력, 증거 판단 등에서 위헌적인 수사와 재판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사법 개혁 3법을 추진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께 감사할 뿐이다"라고 적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해 유죄를 확정받은 장영하 국민의힘 성남시 수정구 당협위원장도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장 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국제마피아파와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고 주장해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사건으로 총 3개 재판에서 징역 47년 4개월을 확정받은 조주빈도 옥중 블로그에 재판소원제에 찬성한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조주빈은 "1·2·3심이 다 엉터리"라며 "유기형 상한은 45년인데 법원이 법을 다 무시하고 막 47년 4개월을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헌재에서 이같은 사건을 각하·기각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로서는 그전까지 법원 판결 후에도 분쟁에 끌려다녀야 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엄격한 사전심사를 통해 재판소원 대상을 제대로 걸러내야 하고, 결국 사전심사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헌법재판소법 72조에 따라 헌재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헌법소원 심판의 사전심사를 진행한다. 헌법소원이 적법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경우 지정재판부는 본안 판단을 위한 전원재판부에 회부하지 않고 청구를 각하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