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시행된 개정 상법은 자기주식을 취득한 모든 회사에 1년 이내 소각 의무를 부과한다. 상장·비상장·벤처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법 시행 전 보유 중이던 자기주식은 내년 9월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소각 절차도 간소화돼 합병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경우를 포함해 취득 경위와 무관하게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각할 수 있다.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처분하려면 요건이 까다롭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실시, 주주 비례 균등 처분,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해야 하고,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서를 작성해 주주총회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계획서에는 보유·처분 목적, 대상 주식 종류와 수, 보유 기간 등을 명시하고 이사 전원이 서명해야 하며, 작성 전 이사회 결의도 필수다.
주총 승인은 매년 반복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이미 통과시킨 수년짜리 처분 계획 내용이 그대로여도 이듬해 주총에서 다시 승인받아야 한다. 개정 상법 시행 전에 처분 공시를 했으나 아직 이행하지 못한 기업도 새로 계획서를 작성해 주총을 거쳐야 한다. 자기주식의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은 허용 사유에 없어 불가능하다.
규제 강화 내용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기주식을 이용한 교환·상환사채 발행과 질권 설정이 금지되고, 합병·분할 시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 배정도 막힌다. 배당권·신주인수권 등 주주로서 권리도 전면 제한된다. 방송·항공·통신 등 외국인 지분 비율 규제를 받는 기업은 소각으로 한도를 초과하면 3년의 처분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소각 의무를 어긴 상장회사 이사에게는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업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상 유일한 방어 수단이던 자사주가 소각 의무화로 기능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은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의무공개매수 중 하나 이상을 법제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어느 것도 없다. 법무부 역시 지난 1월 국회 의견서에서 “국가 핵심산업 우량 기업을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보호하는 대체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