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뤼크아우프(Gluckauf·무사 귀환).’ 1960년대 서독으로 파견된 7000여 명의 한국 광부는 지하 1000m의 탄광을 오가며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1m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다. 가지고 들어간 빵은 탄가루로 범벅이 돼 반찬으로 삼았다. 석탄이라는 적과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쟁이었다.’ <파독 광부 30년사>에 묘사된 것처럼 그들의 처지는 곤궁했다. 독일 북서쪽의 루르 등으로 보내진 파독 광부들은 엄격한 조건에 묶여 3년의 체류 기간 중 정해진 구역의 탄광지대를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사업장 변경' 갈등 커져
불평과 불만이 왜 없었으랴.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을 탓하기에는 가족의 생계가 더 절실한 시절이었다. 고된 노동의 대가는 달콤했다. 1962년 한국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87달러이던 때 파독 광부는 162달러의 월급을 받았다. 웬만한 한국 근로자 월급보다 열 배 안팎 많은 수준이었다. 파독 광부는 그렇게 독일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웠고, 최빈국이던 한국이 보릿고개를 넘어 오늘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밀알이 됐다. 우리는 그 시절의 성실한 외국인 근로자였다.새삼 반세기 전 일을 소환하는 건 이제 노동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뀐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어서다. 올해만 해도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19만 명을 받아들일 예정이다. 가장 첨예한 문제는 ‘사업장 변경’ 기준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임금체불이나 부당한 처우 등 고용주의 귀책 사유가 없는 한 최초 사업장에서 최소 3년을 일해야 한다. 인력난 해소와 숙련도 제고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설정한 최소 기간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1~2년으로 단축하고, 근무지가 속한 권역 내 이동 제한을 크게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한 벽돌공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근로자 괴롭힘 사건이 발단이 됐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직업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지만, 산업계는 현실을 도외시한 낭만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지방 소멸지역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 신중해야
사업장 변경은 해묵은 문제다. 의무 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좀 더 임금 수준이 높은 직장이나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대도시로 옮기려는 외국인 근로자와 당장 일손이 부족한 고용주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서울 문래동의 주물공장에선 입사 3개월 만에 근로계약 해지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태업을 위해 가짜 피를 토하는 꾀병을 연출하는 근로자도 있었다. 이는 노동계가 주장하는 기본권 침해와는 다른 차원의 갈등이다.
3년의 의무 기간을 채우는 외국인 근로자는 턱없이 적다. 2023년 기준 E-9 근로자를 포함한 외국인 임금근로자 92만3000명 중 36.3%가 고용된 지 1년 이내에 근무지를 바꿨다. 의무 기간이 줄어들면 아예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달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오는 4월에 개선안 로드맵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번 정해진 제도는 되돌리기 힘들다. 일부 현장의 일탈을 앞세워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