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앨리스>(1974)의 저널리스트 필립(루디거 보글러)은 미국에 관한 글을 쓰려고 취재 차원에서 길을 걷고, <잘못 접어든 길>(1974)은 제목부터 로드무비임을 드러낸다. 2년 전 국내에서 많은 관객을 모은 <퍼펙트 데이즈>(2023)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려고 매일같이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길의 왕으로서 빔 벤더스의 정점은 <파리, 텍사스>(1984)이다. 발표한 그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이 영화가 빔 벤더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소외당한 인간이 쓸쓸한 풍경과 낙후한 환경에 둘러싸인 길을 걸으며 겪는 고독과 혼란한 감정을 로비 뮐러의 카메라와 라이 쿠더의 슬라이드 기타로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며 말없이 동행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덕분이다.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자가 ‘파란’ 하늘과 ‘하얀’ 살이 노릇하게 익은 듯한 사막을 가로질러 오고 있다. 뚜벅뚜벅 앞으로 걷고 있긴 한데 목적의식이 없어 보이는 눈빛이 어딘가 불안하다. 정처 없이 걷다가 목이 말라 찾아간 바에서 물을 찾다가 정신을 잃는다. 동네 의사가 그를 진찰하고는 기억 상실과 실어증 증세를 감지한다. 소지품에서 연락처를 발견한 의사가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동생이라면서 곧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동생을 만난 그는 얼굴에 미동 하나 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고는 자기 길을 가려고 한다. “4년 전 헤어졌던 형의 아들을 데리고 있어.” 동생의 말에 그제야 입을 뗀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이다. 아들과 재회한 트래비스는 그동안 부재했던 삶의 목적이 생겼다. 아들의 엄마이자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아내를 만나러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 무작정 걷는 대신 차를 타고 휴스턴으로 향한다.
트래비스의 첫 등장과 함께 로비 뮐러가 포착한 빨강과 파랑과 하양의 색감은 성조기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파리, 텍사스>는 미국의 사연인 셈이다. 트래비스가 아들과 동행하는 자동차 또한 빨간색이고 밤새 차를 몰다 차창 밖으로 떠오르는 새벽녘은 푸릇한 하늘 색이 마법처럼 다가온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래와 불쑥 솟은 돌산의 사막 풍경은 곳곳이 하얀 도화지의 여백으로 남아 있어 사유의 순간을 제공한다.

서부의 텍사스에 홀연히 나타나 작별 인사 없이 사라지는 트래비스는 어딘가 서부 사나이의 흔적이 물씬하다. 카우보이모자 대신 야구캡을 쓰고, 말 대신 자동차를 몰며 서부를 횡단하는 트래비스에게는 단 하나, 서부 사나이가 그렇게 지키려 했던 공동체의 가치가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젊었을 적 일궜던 가족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각개전투 중이고, 모뉴멘트 밸리로 상징되는 서부 사막을 벗어난 풍경은 빌딩과 같은 첨단의 시설로 가득하다.
과거의 영광 혹은 존재 목적을 상실한 트래비스는 유령의 처지로 전락했다. 걸어도 걸어도 알아보는 이, 또는 관심 두는 이 하나 없고, 말을 걸어도 걸어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 트래비스는 오랜만에 찾은 그의 동생에게도, 동생의 부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훨씬 이전에 트래비스의 부인은 트래비스를 떠나 지금은 아들마저 트래비스의 동생 부부에게 맡겨두고 멀리 떠났다. 그리고 휴스턴의 파리 지구 핍쇼에서 남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 모든 파탄의 원인인 트래비스는 이를 바로잡고자 제인(나스타샤 킨스키)을 찾아 나선다. 제인에게 아들을 돌려주고 자신은 여기를 떠나 다른 존재가 될 계획이다. 끝을 맺어야 비로소 또 다른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는 까닭이다. 더는 서부 사나이의 가치가 유효하지 않기에 제인과 아들에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를 선사하고 그 자신 또한 표표한 유령의 걷기를 중단하고 서부를 벗어나 사유하고 성찰하는 삶에 집중할 생각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트래비스의 삶은 그래서 슬라이드 기타 하나 빼면 어느 악기의 도움도 받지 않는 라이 쿠더의 음악처럼 처량하고 쓸쓸했다. 하지만 제인과 아들의 연을 다시 맺어준 후 떠나는 라이 쿠더의 기타 연주는 같은 곡을 연주해도 처음과는 다르게 들린다. 마음속에 읽지 않은 책처럼 쌓여 있던 마음의 짐을 던 것처럼 한결 여유롭고, 기타 외의 여백으로 남은 공간음이 넉넉하게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빔 벤더스는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개막 기자 회견 중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습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영화는 정치의 반대말”이라며 “영화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라는 비겁한 답변을 내놓아서다. 로드무비를 통해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고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지에 관해 반추하게 했던 그의 경력을 고려하면 더욱 실망으로 다가온다.

미국 문화에 관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양키가 우리 잠재의식을 식민지화했다”(<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738p 중)라고 과격한 언사도 서슴지 않았던 빔 벤더스는 변한 걸까? 감독은 변할지 몰라도 영화는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오랜 시간을 버틴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파리, 텍사스>(개봉 3월 11일)를 시작으로 빔 벤더스의 영화 열세 편이 개봉과 기획전 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말과 글로만 접했던 전설의 영화들을 직접 확인하시기를.
허남웅 영화평론가
[영화 <파리, 텍사스>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