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번 주 시행을 예고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정유사 공급가격(도매가)에 상한선을 두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유력시된다. 주유소 판매가격을 직접 통제하기보다는 알뜰주유소와 정유사 직영 주유소 등을 활용해 시장 전반에 가격 인하 압력을 유도하는 방안도 정부 내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정부가 기름값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가 된다.
알뜰·직영 통해 '가격 인하 압력' 유도하나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시아 석유제품 거래의 기준 지표로 국내 가격 산정에도 참고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에 최소한의 정제마진을 더해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이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도매가격 상승 폭을 제한해 기름값 급등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주유소 판매가격은 정부가 직접 통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주유소가 1만 곳이 넘고 임대료·물류비·인건비 등 비용 구조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전체 주유소 가운데 정유사 상표 주유소가 약 87%, 알뜰주유소가 약 12%, 무상표 주유소가 약 1% 수준이다. 정유사 상표 주유소 중에서도 직영은 10% 안팎에 불과하고 대부분 개인 사업자가 운영한다.
이에 알뜰주유소나 정유사 직영 주유소 등 가격 조정이 가능한 채널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시장 전반에 가격 인하 압력을 유도하는 방식도 정부 내에서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비자들이 저렴한 주유소로 이동하면서 다른 민영 주유소에도 가격 인하 경쟁이 확산될 수 있다는 논리다.
알뜰주유소는 한국석유공사의 공동구매를 통해 비교적 낮은 공급가격을 적용받고, 직영 주유소 역시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채널이어서 가격 조정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다만 알뜰주유소와 직영 주유소 비중이 전체의 약 10% 안팎에 그쳐 이런 방식만으로 시장 전체 가격을 크게 끌어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최고가격제 관련 시행 방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가 시행될 경우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사례가 된다. 석유사업법이 제정된 1970년 이후 최고가격제가 실제 발동된 사례는 없다.

손실 산정·원가 공개 논쟁 불가피
최고가격제로 정유사 공급가격에 사실상 상한이 설정될 경우 손실 보전 논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가격제의 근거 규정인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는 가격 통제로 인해 사업자가 입는 손실을 국가가 보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실제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과제로 지적된다.정유사 손익은 국제 유가와 정제마진, 기존 재고 원가 등 다양한 변수에 좌우된다. 주유소 역시 인건비와 카드 수수료, 부대시설 운영비 등 비용 구조가 제각각이다.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실제 시장가격을 추정하기 어려워 정책으로 인한 손실만을 분리해 산정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정유사별 원유 도입 시차에 따른 장부 원가 차이도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정유사는 원유를 도입한 뒤 저장과 정제 과정을 거쳐 석유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는 약 3~4개월, 에쓰오일은 약 2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점의 국제 유가라도 실제 생산에 사용된 원유 가격은 정유사마다 다르게 반영될 수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할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도입한 원유를 사용하는 업체와 최근 높은 가격에 원유를 확보한 업체 간 장부 원가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유사가 최고가격제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할 경우 정부가 원가 공개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정제 비용과 원가 구조는 핵심 영업 정보에 해당해 공개 부담은 큰 측면이 있다.
정부는 가격 통제에 따른 공급 축소 가능성을 막기 위한 보완 장치도 검토하고 있다. 정유사가 물량을 수출로 돌리거나 재고를 쌓아두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를 병행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유사 간 담합 여부와 주유소의 불법 가격 인상 여부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