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의 의해 '탑 시크릿'으로 분류돼 극도의 보안이 적용되는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죽음의 가오리'로도 불리는 이 폭격기의 대당 가격은 24억달러, 비행 1시간당 유지 비용은 15만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싸고 강력한 B-2를 최근 이란 공격에 두 차례 투입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시설과 무기고, 이란 미사일 개발 복합단지를 차례로 제거했다. 미 전쟁부(국방부)가 추진 중인 합동전영역지휘통제체계(JADC2)의 핵심 전략 자산인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는 B-2의 엄청난 폭장량과 스텔스 임무를 넘어 미군의 ‘AI 공중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센티넬(LGM-35A)은 세계에서 가장 최신형인 핵미사일 시스템으로 기존 미국의 지상 기반 핵전력인 미니트맨3(LGM-30)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지상 핵무가 체계의 노후화 문제와 기술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센티넬은 400기의 미니트맨3를 전면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고도화가 진행 중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공중과 지상 전략 자산인 B-2와 B-21, 센티넬의 공통점은 미국의 방산기업 노스롭그루먼이 개발했다는 점이다. 기자는 지난해 10월 미 워싱턴DC 인근 노스롭그루먼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만난 트로이 브래셔 부사장에게 회사가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핵심 군사 기술이 무엇인지 물었다. 6세대 전투기나 핵무기가 언급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그의 입에서는 '세미컨덕터(반도체)'라는 답변이 나왔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효자 산업이다. 1980년대 인텔과 도시바의 무시와 견제를 뚫고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 1990년대 후부터 D램 주도권을 단 한 번도 뺏긴 적이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초미세 공정과 대량 생산 능력을 통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업이 됐다. 최근에는 AI 시대 핵심 기술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선도하고 삼성전자가 추격하면서 엔비디아가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다. 증권가에선 AI 메모리 호황을 반영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이 약 37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가 모두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국가다.
반도체 최강국인 한국이 유독 약한 분야가 바로 노스롭그루먼이 사활을 걸고 있는 국방 반도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서 우리나라 방공무기 '천궁-Ⅱ'가 95%의 요격률을 기록하며 성능을 입증하자 UAE 등 이란 주변 국가들은 천궁-Ⅱ를 빨리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다. 천궁-Ⅱ 탐색기의 안테나와 구조는 국산화됐지만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용 반도체는 전량 수입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AESA 레이더용 반도체는 수백~수천 개의 송수신 모듈(TRM)에서 전파를 증폭·송수신하고 빔을 전자적으로 조향해 표적을 탐지·추적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 방산업체는 레이더, 유도무기, 군통신 등 50여 개 주요 무기체계에 적용되는 반도체의 약 99%를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유는 개발비가 많이 들고 돈이 안되서다.

이처럼 높은 해외 의존도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에 취약한 구조를 낳고, 무기 수출 과정에서도 기술 이전이나 부품 수급에 대한 제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핵심 국방반도체중 고출력 RF 반도체는 수급 불안정성이 가장 심각하다. 이 기술은 현재 미국의 전력 솔루션 기업 '코보' 등 극소수 선진국 기업이 독점적으로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또 무기체계에 활용 가능한 기술로 분류되기 때문에 강력한 수출 통제를 받고 있다. 차세대 레이더, 위성체 등 첨단 무기체계에 많이 사용되는 고주파 대역으로 갈수록 수출 통제 기준이 강화되고 있어 수급 안정성 문제는 앞으로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반도체 국산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국방반도체는 극심한 온도변화와 강한 진동,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는 사용 환경 때문에 일반 반도체보다 개발이 훨씬 어렵다. 또 군사 임무의 특성상 절대적 신뢰성이 요구되며, 일반 반도체처럼 대량 생산이 힘들어 개발·생산 단가가 높다. 무기가 투자비와 스펙 대결에서 벗어나 실제 전장 투입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오폭 없는 정확한 투하의 중요성 커지고 있는 점 역시 내구성 측면에서도 국방 반도체 중요성 부각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기술 내재화, 공급망 구축, 인재 양성, 정부 정책 지원, 실전 적용이 유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특히 고출력 RF 반도체, 전력 반도체 등 전략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파운드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해 설계와 제조, 패키징, 검증에 이르는 생산단계별 국내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에서 설계만 하는 것이 국산화가 아니라, 국내에서 양산이 이뤄져야 한다. 유사시 전략 물자를 국내에서 자립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술 안보 실현이 가능해서다. 미국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방산 기업으로 평가받는 노스롭그루먼이 방산 반도체 개발과 제조에 전사적인 역량을 쏟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방 반도체는 우주 반도체와도 연결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는 달에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모건스탠리는 2040년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 규모가 약 1조달러(13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 반도체 시장도 그만큼 비례해 커진다는 뜻이다. 앞으로 다가올 우주 시대에 한국이 반도체 패권 국가 지위를 잃지 않으려면 국방 반도체에 더 투자해야한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