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 명에서 3500만 명. 중일전쟁(1937~1945) 기간 전사하거나 학살당하거나 아사한 중국인 숫자다. 그전에 아편전쟁과 잇따른 내란, 외세 침탈로 죽은 수천만 명은 제외한 숫자다. 이가 갈릴 수밖에 없는 참혹함에 대한 해석은 ‘공학기술에서 밀려서’였다. 해결책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東)의 정신문명(道)은 굳게 지키되 서양(西)의 공학기술(器)을 전투적으로 들여와 쌓인 원한을 갚자는 뜻이다. 원래는 우수했는데 공학기술에 잠깐 밀리는 바람에 지옥도가 펼쳐졌다고 생각하니 대약진운동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와중에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핵폭탄과 인공위성을 개발할 수밖에. 공학기술에 대한 그들의 원한은 200년이나 묵었으니 웬만해서는 말릴 수 없다.중국을 이끈다는 칭화신군(?華新軍), ‘1980년대생인데 중앙정부 국장급까지 올라선 관료 75명’의 50%가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이다. 박사 35명, 석사 28명, 학사 12명이다. 이런 정부, 웬만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건 최근 현상도 아니다. 2002년 최상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고 수장인 후진타오는 칭화대 수리(水利)공학 전공에 10년이나 수력발전소에서 근무한 공학자였다. 사실 이 전통은 엄청 오래됐다. 중국 최초의 국가라는 하(夏)나라를 세운 이는 우(禹)다. 도덕 군주 상징인 순(舜)왕이 고질적인 황하의 물난리를 해결한 수리공학자 우왕에게 왕위를 넘겨준 거다. 우왕은 현자를 찾아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제를 폐기하고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제를 최초로 도입했다. 공학자는 본성적으로 장기 집권을 좋아하나? 최초의 공학자 군주 우왕에서 시작해 10년 교체 기준을 폐기한 칭화대 화공과 출신 시진핑까지. 어쩌면 중국은 ‘공자의 나라’가 아니라 ‘공학자의 나라’일 수도 있다.
망치를 오래 쥐고 있으면 주변의 모든 점이 튀어나온 못대가리로 보일 수 있다. 공학자 정치인은 국가를 하나의 기계장치로 이해하는 직업병을 앓기 쉽다는 게 문제다. 국가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할 공학적 기계로 보이니… 토론이라고? 부품 따위가 뭔 토론! 설계 의도와 다르게 돌아가며 삐걱대는 부품이 있다? ‘고장’이므로 최대한 빨리 교체해야 한다. 방침에 잘못이 있다고 직언하는 보고자? 고장의 징후다. 소송하는 놈? 이건 완전히 고장 나 폐기할 부품이다. 공학적 사고와 행동은 일사불란해서 얼핏 통쾌해 보이지만 멈춤과 방향 전환에 더딜 수밖에 없고 세월이 갈수록 부작용이 다대해진다. 인구에 관해 잘 모르는 로켓공학자의 제안으로 덜컥 시작한 1자녀 정책도 천하대사를 ‘공학적’으로 풀 수 있다는 오만이었다. 그걸 멈추는 데 35년이 필요했고 누적된 부작용을 이제부터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구 2500만 명의 상하이를 8주 동안 전면 봉쇄한다거나 부동산 기반의 부채 성장과 붕괴, 플랫폼산업에 대한 맹폭, 태양광의 엄청난 공급 과잉 등도 전부 방향 전환이 늦어서 생긴 일이다. 전기차, 로봇에서 굴기? 소련도 한때 우주공학에서 미국을 압도한 적이 있지만 짧은 영화 끝에 자기 스텝에 걸려 자빠졌다. 누가 뭐라고 한들 그들은 ‘공학자’ 길을 계속 가겠지만 사무친 원한의 문제이니 말리기도 어렵다. 그래도 그건 중국 사정이니 내 알 바 아니고.
사농공상, 공업과 상업은 천한 것이니 오로지 ‘과거에 급제해 집안 원한을 푸는’ 입신양명이 효의 완성이라는 믿음은 조선 500년을 관통해 ‘고시 합격’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몇 안 되는 수재가 고시원에서 합격할 때까지 법전만 파고들어 ‘출세’란 걸 한 뒤에는 수사하고 벌주는 일에, 법정에서 피고와 원고로 나눠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내는 일에 매진한다. 그러다 보면 주변이 피의자나 적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 ‘법 전문가’의 부작용을 3년이나 겪었지만 토론과 타협보다 고소·고발의 범람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힌다. 역사를 돌아보면 평생 살아온 길이 그러할 경우 누가 말려도 그 길로 가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기 쉽다. ‘율사 국가’의 토론과 타협 부재라는 현실 앞에서 ‘공학자 국가’를 뭐라 하기도 민망하다. 웬만하면 좀 만나기라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