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전 서울 소공동의 한 백화점에 있는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매장. 올초만 해도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던 ‘오픈런’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적막감만 감돌았다. 방문객은 한 명도 없었고, 매대를 정리하는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프라다와 보테가베네타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던 샤넬과 루이비통 매장 앞도 한산했다.
최근 증시 활황으로 역대급 실적을 올렸던 백화점과 명품 브랜드의 결제액이 지난주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글로벌 증시가 불안정해지자 소비자가 지갑을 닫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면 모처럼 살아난 소비심리가 다시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라진 ‘부의 효과’

10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이달 첫째주(1~7일) 백화점 업종의 신용카드 결제액은 548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둘째주부터 직전주(6869억원)까지 매주 증가세를 이어가다가 일주일 만에 20.1% 급감했다. 같은 기간 할인점 및 슈퍼마켓(12.23%) 등 다른 유통채널의 결제액이 증가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한경에이셀은 국내 신용카드 이용자 2000만여 명의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체 결제액을 추산한다.
백화점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명품 브랜드의 결제액이 크게 감소한 영향이다. 감소폭이 가장 큰 건 티파니였다. 지난주 백화점 신용카드 결제액이 일주일 전보다 86.97% 급감했다. 피아제(-71.09%), 바쉐론 콘스탄틴(-66.33%), 까르띠에(-65.54%), 불가리(-54.6%)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명품 3대장’으로 불리는 에르메스(-28.64%), 루비이통(-16.9%), 샤넬(-13.92%)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중동 리스크로 인해 증시 혼란이 커지면서 고가 소비가 꺾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반년 새 코스피지수가 3000선에서 6000선으로 고공행진하면서 백화점과 명품 브랜드가 대표 수혜주로 떠올랐다. 자산 가치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부의 효과’ 때문이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하반기 명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사상 최대 연간 매출을 올렸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핵심 점포도 조(兆)단위 거래액을 기록했다.
내수 회복을 가늠하는 지표인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중반까지 80~90에 머무르다가 7월부터 줄곧 110 이상을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증시 혼조에 소비 대신 투자

하지만 전쟁이 터진 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4일 코스피지수는 5000선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후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혼란이 커지자 사치재 수요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경에이셀에 따르면 명품뿐 아니라 패션·잡화(-16.8%), 화장품(-38.53%) 등 대표적인 소비재 업종의 결제액도 일제히 전주 대비 줄었다.
그 대신 증시 반등을 노리고 투자에 집중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 증시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4일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132조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중동 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 내수 경기가 둔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아직 전쟁이 언제 일단락될지 모호한 상황이지만, 장기화할 경우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