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에너지정책연구소장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질문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대형 전력수요의 등장, 전력망 확충, 시장과 감독 제도의 개편까지. 이제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방향 제시를 넘어 수많은 변수와 이해관계를 함께 계산해야 하는 ‘시스템 설계’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켄텍)의 신임 에너지정책연구소장을 맡은 김승완 교수는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직관이나 주장에 맡겨두기보다 데이터와 모형을 통해 계산 가능한 문제로 풀어내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책 연구의 역할은 정책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문승일 초대 소장님에 이어 2026년 1월부터 에너지정책연구소장을 맡게 되었는데 소감은.
“켄텍 에너지정책연구소는 ‘정량적 분석과 모형 개발을 통해 정책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제도·시장·거버넌스 차원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에너지 정책을 설계·구현한다’는 미션 아래 다양한 에너지 정책 연구를 수행하는 역동적인 연구기관이 되고자 한다. 정책 결정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결정이 어떤 데이터와 모형에 기반하는지, 사후에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이행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포함한 정책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는 연구소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우리 연구소는 정책 목표를 수치와 제약조건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대안 간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계산 가능하게 만들며, 현실에서 집행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는 것까지를 고민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정책연구소에서 초점을 두고 있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전력망 모형을 활용해 분산에너지의 ‘입지에 따른 시스템 편익’을 정교하게 계산하는 연구들을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기존 분산에너지 정책은 주로 설비 보급량이나 발전량 중심의 지원에 머물러 있었지만, 실제 전력 시스템 차원에서는 어디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송전망 투자, 혼잡, 손실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소에서는 전력망 계획 모형과 운영 모형을 결합한 정량 분석 프레임워크를 개발해 왔다. 구체적으로 전력망 확충계획 모형을 활용해 분산에너지가 적절한 위치에 배치될 경우 송전선로 증설을 얼마나 회피할 수 있는지를 계량적으로 평가하고 장단기 관점에서 혼잡 비용과 손실 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고도의 컴퓨팅 자원을 통 계산하여 시나리오를 비교한 결과 동일한 분산에너지 보급량이라 하더라도 입지에 따라 전체 시스템 비용이 최대 약 27%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확인했다.”
고도의 컴퓨팅을 이용한 것이 흥미롭다. 또 다른 연구로는 어떤 것이 있나.
“전력망 모형을 활용해 AI 학습 데이터센터와 같은 신규 대형 전력부하가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입주시키고 수요반응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2035년 기준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최대 42.6% 감소하고 계통 운영비용도 약 6.3% 절감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의 핵심은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전력수요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잉여전력을 흡수하고 계통 혼잡을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 자원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축으로 전력시장과 전력계통의 복잡성이 급격히 증가하는 환경에서, 사후 규제가 아닌 ‘실시간 감시·조기경보·집행’이 가능한 전력감독 체계를 설계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력감독원 설립을 전제로 한 AI 기반 실시간 전력감독 시스템이 그것이다. 대규모 시뮬레이션과 AI 학습을 병행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연산 인프라 등 고도로 전문적인 컴퓨팅 기법을 사용하고 AI의 새로운 활용을 고민하면서 알고리즘을 짜는 연구들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마주한 가장 큰 병목 현상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병목은 기술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논의를 정량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인력과 분석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 국면에서 망 확충, 분산자원, 대형 수요, 시장·감독 제도를 두고 논의는 활발하지만 각 선택지가 계통과 비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산으로 비교할 수 있는 체계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 결과 정책은 종종 직관과 가치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논쟁은 반복되지만 학습은 축적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다. 임기 내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주장이나 담론이 아니라 수치와 시나리오로 토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량 분석 인프라와 인력 결합 구조만큼은 분명히 제시하고 싶다.”
‘에너지 고속도로’ 개념의 설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앞으로 창출해야 할 부가가치는 무엇인가.
“에너지 고속도로를 단순한 송전망 확충 정책이 아니라 육지 송전망 확충과 장거리 해상 초고압직류송전(HVDC),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기반의 ‘에너지 휴게소’, 지역 생산-소비 구조를 구현하는 지역 전력망,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전력망 안정화 기술을 갖춘 계통 안정화 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포괄하는 ‘에너지 기초공사’로 재정의했다. 현실적으로 지역 수용성 문제로 인해 우리가 계획한 송변전 사업 상당수가 제때 준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송전선로 확보의 핵심 병목은 기술이나 재원보다 입지·인허가·주민 수용성에 있다. 따라서 단기 수요 대응식 계획이 아니라 초장기적인 큰 그림을 먼저 제시하고 주민 수용성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히 확보한 뒤에 송·변전 계획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창출해야 할 경제적 부가가치 역시 단순한 전력 이송이 아니라 지역 분산형 투자, 계통 안정 비용 절감, 그리고 장기적인 산업 입지 경쟁력 제고로 연결되어야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유연성이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정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BESS는 계통의 다양한 필요에 따라 요구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기존 전력시장 안의 정산 구조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계통은 특정 시간대나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저장 용량을 기준으로 BESS의 연간 필요량을 결정하는데, 이를 단순한 충·방전 차익거래 중심의 수익 모델로 회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연료비가 제로(0)인 재생에너지 자원이 확대될수록 도매시장 가격은 구조적으로 하향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시스템 비용은 예비력 확보, 발전용량 유지, 변동성 대응, 송·배전망 건설 비용 등으로 이전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BESS를 포함한 저장자원에 대한 정산 방식 역시 새로운 시장·계통 환경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BESS 중앙계약시장은 저장자원의 생애비용을 보상하는 혁신적인 중앙조달형 시장제도라고 평가한다. 다만 이 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계획된 물량이 적정한지, 입찰 과정에서 충분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지 엄격한 감시와 점검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공대의 특장점은 무엇이고, 어떤 연구에 특화될 수 있나.
“가장 큰 강점은 에너지 문제를 단일 학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다룰 수 있는 연구소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교내 차세대 그리드 연구소, 에너지AI연구소, 환경기후기술연구소, 수소에너지연구소, 에너지신소재연구소, 원자핵연구소와 협력해 정책?기술?운영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문제로 설계하는 학제 간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협업의 목표는 기술 개발이나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국가 계획과 제도 설계에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데 있다. 통합형 연구를 통해 국내에서 정책이 요구하는 기술과 기술이 요구하는 정책을 동시에 설계하는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의 포부와 향후 비전이 궁금하다.
“우리 연구소의 향후 3~5년간 목표는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정책 설계 능력을 갖춘 연구소로 포지셔닝 ②다양한 국가 에너지계획의 계산 가능성, 재현가능성을 높여 국가 법정계획으로서의 권위 회복에 기여 ③미래 에너지산업과 에너지 시장, 제도, 거버넌스까지 포함하는 정책개편 패키지 제안 ④정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중립적 플랫폼 기능 수행 등이다. 우리 연구소는 이런 방향성을 함축하여 측정, 모델, 실행(Measured, Modeled, Implemented)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이는 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자체 기준으로도 작동하도록 운영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신뢰받는 ‘정책 설계 허브’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