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스윙의 아버지’ 벤 호건은 37세 때 고속도로에서 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쇄골, 갈비뼈, 발목 등 11군데 뼈가 부러졌다. 의사는 다시 걷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호건은 병상에서 클럽을 들고 왜글 동작을 반복하는 등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퇴원 후에는 고통스러운 재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16개월 뒤 미국 최고 골프대회 US오픈. 최종 라운드 다음 날 18홀 승부로 치러진 연장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으로 꼽힌다. 호건은 평생 다리 통증에도 메이저대회에서 여섯 번 더 우승했다. “골프는 내 인생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골프 하러 갔다.”
잭 니클라우스는 40세인 1980년 PGA챔피언십 우승 이후 6년간 메이저 우승이 없었다. 미국 한 신문이 그런 니클라우스를 비아냥대며 ‘황금 곰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1986년 46세의 니클라우스는 마스터스오픈에서 이 기사를 오려 냉장고에 붙여 놓고 대회에 임했다. 그는 캐디로 나선 아들이 보는 앞에서 후반 9홀에서만 7타를 줄여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스토리 없는 우승은 없다. 멘털에 극도로 예민한 골프에서는 더 그렇다. 퍼팅 입스를 이겨내기 위해 왼손 퍼팅까지 불사한 대만 여자 골퍼 쩡야니의 4306일 만의 우승,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 인생 나락으로 떨어졌던 한국계 앤서니 김의 5798일 만의 우승 스토리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지난 주말, 골프 팬들의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던 이미향의 우승 소식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시드권을 잃고 큐스쿨까지 추락했던 그는 숱하게 골프를 그만둘까 하다가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3143일 만에 LPGA 우승컵을 다시 품었다. 작년 가을 러프에서 샷을 하다가 나무뿌리를 치는 통에 어깨를 다쳐 진통제에도 풀스윙을 못 하는 상황에서 발휘한 투혼이라 더 빛났다. 이날 TV 중계 해설자가 김인경이었다. 30㎝ 퍼팅 실패 후 5년간 명상과 그림 그리기 등으로 극복한 동병상련이 있는지라 그의 목소리도 잠겨 있었다.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는 끝났다”는 편견을 깬 사람들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