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자가 중국 바이오텍으로부터 판권을 확보한 차세대 비만치료제가 중국 현지 승인을 획득했다. 자체 비만치료제 개발에 난항을 겪던 화이자가 외부 도입 자산을 통해 시장 재진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동일 물질의 국내 권리를 일찌감치 확보한 HK이노엔의 선제적 안목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지난 6일 화이자가 중국 내 권리를 보유한 GLP-1 수용체 작용제 ‘시안웨이잉(성분명 에크노글루타이드)’을 성인 과체중 및 비만 관리 용도로 승인했다. 이번 승인은 화이자가 지난 2월 24일 중국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와 중국 현지 판권 계약을 체결한 지 불과 열흘 만에 이뤄진 성과다.
위고비 대비 빠른 감량 속도
시안웨이잉은 글로벌 비만치료제 블록버스터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동일하게 주 1회 투약하는 GLP-1 단일 작용제다.중국 임상 3상(SLIMMER) 결과에 따르면 시안웨이잉 2.4mg을 48주간 투여한 환자군은 평균 15.4%의 체중 감량을 기록했다. 이는 위고비가 글로벌 임상(STEP 1)에서 68주간 달성한 14.9%보다 우월한 수치다. 투약 기간이 20주 짧음에도 절대 감량치가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임상 대상자의 기저 체중(Baseline) 데이터를 살펴보면 시안웨이잉의 효능은 더욱 부각된다. 위고비 임상(STEP 1) 참여자의 평균 체중은 105.3kg(BMI 37.9)인 반면, 시안웨이잉 임상은 평균 89.2kg(BMI 32.1) 수준의 상대적으로 날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통상 체중이 적게 나갈수록 비례적으로 감량 폭을 키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안웨이잉이 위고비 대비 강력한 감량 효율을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투약 기간이 위고비보다 20주가량 짧음에도 불구하고 감량 절대치는 더 높게 나타났다. 임상 종료 시점인 48주 차까지 체중 감소 그래프가 정체(Plateau) 구간 없이 지속적인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는 장기 투약 시 추가 감량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내약성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수치를 확보했다. GLP-1 계열 약물의 고질적 문제인 소화기계 부작용으로 인한 임상 중단율이 시안웨이잉은 약 1.5% 수준에 그쳤다. 위고비의 중단율이 통상 4~7%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환자들의 복약 편의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cAMP-편향적 차별적인 기전
시안웨이잉은 위고비와 같은 GLP-1 단일 작용제이지만, 수용체 내인화(Internalization) 과정에서의 신호 전달 선택성을 높인 ‘cAMP-biased’ 설계를 차별화 포인트로 제시하고 있다.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췌장 베타세포와 중추신경계의 GLP-1 수용체(GLP-1R)에 결합해 세포 내 2차 전령인 cAMP(Cyclic AMP) 생성을 증가시킨다. cAMP는 세포 외부에서 전달된 신호를 내부 반응으로 전환하는 핵심 신호이며, 췌장에서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서는 식욕 억제 신호를 활성화한다. 이 때문에 cAMP 신호의 강도와 지속 시간은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 효과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기존 GLP-1 약물은 수용체 활성화 과정에서 cAMP 신호와 함께 베타 어레스틴(β-arrestin)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한다. 이 과정에서 수용체는 세포막에서 세포 내부(엔도좀)로 이동하는 내인화(Internalization)를 거치며 신호 전달 강도가 조절된다.
반면 시안웨이잉의 성분 에크노글루타이드는 cAMP 신호 전달에 선택성을 높이고 β-arrestin 결합을 낮춘 ‘cAMP-biased’ GLP-1 작용제로 설계됐다. 회사 측은 이러한 구조가 수용체의 세포막 체류 시간을 늘려 cAMP 신호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β-arrestin 경로 억제가 실제 부작용 감소나 체중 감량 효과 증가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GLP-1 수용체 내인화 자체가 정상적인 신호 전달 과정의 일부라는 연구도 있어, 기존 약물 대비 임상적 우월성을 판단하려면 직접 비교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화이자보다 앞선 HK이노엔 안목
화이자의 이번 시안웨이잉 중국 판권 확보는 국내 제약사 HK이노엔의 선제적 안목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 빅파마인 화이자가 자체 후보물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선택한 물질을 국내 기업이 약 1년 9개월 앞서 도입했기 때문이다. HK이노엔은 2024년 5월 이미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독점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현재 HK이노엔은 지난 1월 국내 개발코드명 IN-B00009의 국내 임상 3상 시험을 위한 대상자 모집을 완료하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 9월 첫 투약을 시작한 지 약 4개월 만에 목표 인원을 채운 셈이다. IN-B00009은 연내 40주간의 투약을 마무리하고, 신속하게 국내 허가 신청 절차에 돌입할 계획이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닷컴 바이오 전문 채널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2026년 3월 10일 13시22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