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인천의 발전소와 소각장 등에서 버려지던 폐열을 사들이고 있다. 30도 정도의 미지근한 온수지만, 이를 활용해 제약 공정에 필요한 열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1년여 전 집단에너지사업자 인천종합에너지의 열배관망을 송도 공장까지 연결하는 공사를 마쳤고, 지난해에는 전체 열 사용량의 11%를 이 폐열로 충당해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하이드리드 기술
11일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쓰는 에너지의 종류(최종에너지 소비원)를 분석한 결과, 자동차 선박 등에 쓰이는 수송용 연료(약 30%)나 가전제품을 돌리는 전기(약 20%)보다 무언가를 데우거나 식히는 열에너지가 약 50%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EA는 이 열에너지를 얼마나 깨끗하게 만드느냐가 전기화 기술의 '마지막 미개척지'라고 분석했다.이유는 온도에 있다. 집이나 건물의 냉난방용 열은 온도가 낮아 현재의 전기히트펌프 기술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반면 공장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산업용 열은 150도 이상의 초고온 스팀이다. 화석연료 보일러 등이 아닌 전기를 갖고 24시간 연속으로 생산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현재 산업용 히트펌프나 전극보일러, 열배터리 같은 '열저장(TES)' 제품들이 연구·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엔 기술적 한계와 경제성 문제가 남아있다. 이 장치들은 남는 무탄소 전기를 열로 바꾼 뒤 저장해두는 'P2H(Power to Heat)' 기술의 핵심 병기로 꼽힌다.

결국 산업계는 당분간 폐열과 첨단 기술을 섞어 쓰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임용훈 숙명여대 기계시스템학부 교수는 "산업 현장의 150~250도 고온 스팀을 전기로 단번에 만들기는 어렵다"며 "발전소·공장 등에서 나오는 낮은 온도의 폐열을 모은 뒤 히트펌프나 압축기 등을 이용해 단계적으로 온도를 끌어올려 활용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인 중간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도 인천에너지에서 받은 30도의 폐열을 열교환기를 통해 60도까지 높여 보조 열원으로 쓰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공정에서 나오는 30도 폐열을 산업용 히트펌프로 최대 100도까지 끌어올려 공기 조절이나 가습용 온수로 재활용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 장비를 직접 가열하는 150도 이상의 초고온 스팀까지 히트펌프로 만드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지만, 버려지는 열부터 알뜰하게 업사이클링하는 것이 산업용 열 청정화의 첫걸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술 확산에 앞서 '열시장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시장은 발전소나 소각장이 폐열을 공급사에 넘기는 도매 시장과, 이를 사들여 공장에 공급하는 소매 시장으로 나뉜다. 삼성바이오의 사례는 대표적인 소매 거래다. 실제로 기업 간 열 도매 거래는 2024년 기준 20건으로 파악되는 등 꾸준한 증가세에 있다.
최근에는 산업단지 내 기업끼리 열을 직접 주고받는 '직거래 모델'도 등장했다. GS칼텍스는 여수 국가산단에서 발생한 유황을 남해화학에 주고, 남해화학은 이를 활용해 황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폐열 스팀을 다시 GS칼텍스에 돌려주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열거래 시장
그러나 삼성바이오나 GS칼텍스처럼 폐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집단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발전소 폐열이나 소각열 등 쉽게 연결 가능한 열원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남아 있는 열원은 수요처와 너무 멀어 배관 설치비가 열값보다 비싸지거나, 수송 과정에서 열손실이 커 경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저온(低溫) 폐열은 20km 이상 장거리 수송 시 효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신규 열사업의 성패가 단순한 '열 발굴'이 아닌, 거리와 온도 등 배관 경제성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물리적·제도적 진입 장벽도 높다. 집단에너지 사업은 거대한 열배관을 지하에 깔아야 하는 '장치 산업'으로,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구역마다 사업자를 한 곳씩만 지정하는 자연 독점 구조가 형성돼 있다. 특히 이미 지하 매설물이 꽉 찬 구도심이나 노후 산단은 신규 배관을 깔 공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는 "남의 배관을 빌려 쓰려 해도 비용 산정이나 사고 책임 소재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며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시장의 경직성을 풀기 위해 열에너지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열거래 플랫폼' 구축과 함께, 일정 비율 이상의 청정열 사용을 강제하는 '청정열 공급의무화(RHO)'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어떤 열원을 '청정열'로 인정할 것이냐다. 일각에서 재생열이나 소각열, 산업 폐열만 인정하고 가스발전소 폐열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그러나 집단에너지 업계는 "현실적으로 가장 큰 공급원인 발전소 폐열을 빼면 시장 자체가 고사할 것"이라며 우려한다.
삼성 관계자는 "가스 기반 폐열이 글로벌 RE100 기준에서 완전히 '그린'으로 인정받을지는 고민이지만, 탄소 감축 효과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럽은 이미 2023년 개정된 재생에너지지침(RED III) 등을 통해 공장과 데이터센터 등에서 나오는 폐열뿐만 아니라 발전소 폐열도 활용할 수 있도록 폭넓게 장려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규제가 너무 엄격하면 산업용 스팀 가격이 올라 수요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일본 GX기금처럼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청정열공급인증서(RHC)'를 발급해 사업자가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