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프로그램북을 내밀며 마에스트로에게 말씀드렸다.
“22년을 기다렸습니다. 감동적인 연주 감사합니다. 어제도 왔었습니다.”
사진에 사인을 해주며, 마에스트로가 말했다.
“그대에겐 이틀 중 어느 날이 더 좋았는가?”
환자가 답했다.
“저는…음…b단조 미사를 들려주신 첫날이 더 좋았습니다.”

#2.
오디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투용 음반’이라는 것이 있다. 비(非)환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오디오 기기 자체에 관심을 갖고 기기를 적극적으로 비교 시청하거나 새로 들이기도 하는 것을 오디오를 “한다”고 표현한다.
오디오를 “하려면” 비교 시청용 레퍼런스 음반이 필요하다. 똑같은 음악을 서로 다른 기기에 물려봐야 기기의 소리 차이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쓰는 레퍼런스 음반을 ‘전투용 음반’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전반기에 특히 사랑받았던 ‘전투용’ 음반들 가운데,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바흐 b단조 미사>가 있다. 아르히브(Archiv)에서 나온 두장짜리 CD인데, CD1의 12번 트랙, ‘쿰 상토 스피리투(Cum Sancto Spiritu, 성령과 함께)’가 특히 비교시청(a.k.a.’전투’)에 애용됐다. 합창단과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가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오는 이 트랙을 어떻게 재생해 내는지는 오디오 기기 비교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흥미로운 건 거의 대부분의 오디오 파일은 두 장의 CD 가운데서 오로지 이 트랙(CD1의 12번)만 듣는다는 것이다. 이 장대한 미사곡의 다른 트랙들도 듣느냐, ‘쿰 상토 스피리투’만 듣느냐는 오디오 매니아와 클래식 매니아를 가르는 기준이기도 했다.
#3.
그런 가디너의 바흐 b단조 미사를 실제 무대로 만나게 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22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첫 곡 ‘키리에’의 장대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순간, 지난 30년간 음반에서 듣던 것과 같은 결의 음향임을 직감했다.
신기했다. 아르히브 음반의 연주와 내가 들은 실연은 시간과 장소와 악단이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결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가디너라는 거장 지휘자의 힘이 이런 것인가.

비교적 빠른 템포와 다이내믹함, 기민한 악상 변화 등 음반에서 듣던 가디너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 대음량을 낼 때의 감동이 컸다. 현대식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비해 훨씬 적은 인원으로 어쩌면 그렇게 짱짱하고 팽팽한 소리를 크고 고르고 아름답게 낼 수 있는지!
오디오 파일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 1부의 끝 곡 ‘쿰 상토 스피리투’는 가디너도 특별하게 취급했다. 이 곡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첼로와 팀파니 등 일부를 제외한 단원 대부분을 일으켜 세웠다.
불꽃놀이처럼 30년간 머릿속에 그려왔던 소리의 꽃밭이 오로라처럼 예술의전당 안에 펼쳐졌다. 하이엔드 오디오에 CD를 걸어 들을 수 있는 사운드만큼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음향의 아름다움과 조화는 오디오에 의한 재생이 감히 필적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이런 기회에나 한 번씩 들을 수 있는 바로크 악기들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도 좋았지만, 밸런스 조절이 더 귀에 들어왔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3대의 내추럴 트럼펫 소리는 또렷하면서도 튀지 않았다.
호른 주자는 앞줄로 나와 독주 파트를 연주할 때도 벨을 단원 쪽(무대 뒷벽 방향)으로 돌려, 강한 소리가 객석으로 직접 나가지 않도록 했다. (호른 주자는 음 이탈이 무척 많았는데, 바로크 호른은 워낙 연주가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은 악기라 그러려니 했다. 커튼콜 때 지휘자도 호른 주자를 따로 일으켜 세워 박수를 유도했다.)


다른 악기들 가운데는 류트 족의 저음악기인 테오르보가 눈에 들어왔다. 테오르보를 대편성에서 통주저음으로 쓰는 걸 본 적이 있나 싶었는데, 통기타 가수가 코드 치듯이 테오르보를 스트로크 주법으로 ‘치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총주 속에서 테오르보 소리를 식별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임팩트 강한 사운드로 귀와 눈을 사로잡은 팀파니 주자의 맹활약도 특기할 만했다.

가디너는 독창자들이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자기 순서에 무대 앞으로 나오도록 한다든가, 합창단이 때때로 중앙을 비우고 좌우로 나누어 서게 한다든가 하는 다양한 연출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후반부에선 ‘크레도’나 ‘크루시픽스’ 등을 들어갈 때, 합창의 첫 자음(k, r)을 기악보다 먼저 강하게 발음하는 게 귀에 꽂혔는데, 과거 음반에서보다 실연에서 이를 더욱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후반부의 곡들 가운데 ‘호산나’, ‘상투스’의 감동이 컸고, 특히 마지막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은 ‘거룩하다’ ‘숭고하다’같은 형용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 좋은 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적어 놀랐다. 2층 괜찮은 구역에도 빈자리가 듬성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홀 로비에선 평소 한자리에서 다 보기 힘든 평론가들과 애호가 아재들을 모처럼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소수정예의 부흥회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며 우리끼리 웃었다.
#4.
둘째날은 오히려 청중이 훨씬 많이 모였다. 전반부 모차르트 c단조 미사때문은 아닐 것이고, 후반부 레퍼토리인 모차르트 레퀴엠의 대중성이 바흐 b단조 미사보다 훨씬 높기 때문인가 보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미사곡이라는 특성상 레퀴엠은 슬픔 속에 가라앉듯 느리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가디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 없이 성큼성큼 다이나믹하게 곡을 진행해 나간다. 첫 입당송부터 그랬다. 지휘자 크리스토프 슈페를링(Christoph Sperling)은 모차르트 레퀴엠의 입당송 템포를 ‘실제 장례미사를 위해 성당에 들어서는 조문객의 발걸음 속도에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가디너가 택한 템포도 이와 해석의 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감정을 걷어낸 듯한 해석은 디에스 이래, 투바 미룸, 콘푸타티스 등에서 효과가 좋았던 반면, 라크리모사에서는 아무래도 ‘좀 더 슬퍼도 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슬픔을 강요하지 않지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였다.
#5.
바흐 b단조 미사와 모차르트 레퀴엠을 다 잘하는 지휘자로는 필리프 헤레베헤를 빼놓을 수 없다. 헤레베헤의 음반들 또한 30년 이상 필청반이었고 두 곡 다 한국 무대에서 들려줬기에,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나는 헤레베헤의 음악에서 보다 따뜻하고 촉촉한 느낌을, 가디너의 음악에서 보다 밝고 뽀송뽀송하며 역동적이고 팽팽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바흐 b단조 미사는 가디너, 모차르트 레퀴엠은 헤레베헤로 듣는 걸 선호해 왔다.
세상이 좋아진 덕에 서울의 같은 공연장에서 두 지휘자가 각자의 악단을 끌고 연주하는 걸 감상하는 복을 누렸다. 음반으로 느껴온 두 지휘자 음악의 성향 차이가 예술의전당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게 흥미로웠다. (헤레베허는 2025년 9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이끌고 b단조 미사를 공연했다)
#6.
이틀간의 가디너 공연에서 몇 가지 눈에 띄었던 점들을 적어보자면…
독창자 중 가장 눈에 띈 이는 카운터테너 레지널드 모블리였다. 수염을 기른 거구의 흑인남성이 성악진에 포함된 모습을 보고는 당연히 베이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흑인 남성 가수 중에 출중한 베이스 바리톤이 여럿 있으니까. 오산이었다. 그가 카운터테너일 줄이야.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넘겨짚으면 안 된다. 그의 노래는 상당히 좋았고, 커튼콜 때 박수도 많이 받았다.

가디너는 이틀 다 벨벳 재킷에 빨간 소매의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그는 포디움을 놓지 않고, 단원들과 같은 높이의 바닥에 그대로 서서 맨손으로 지휘했다. 큰 키를 고려할 때, 포디움을 두지 않는 것이 단원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기에 더 좋았던 모양이다.
오케스트라는 첫날과 둘째 날 악기군의 자리 배치가 달랐다. 바흐 b단조 미사를 연주한 첫날은 트럼펫이 왼쪽 뒤편에 자리잡았고, 팀파니도 왼쪽이었다. 목관의 상당수는 우측 앞쪽에 포진했다. 모차르트를 연주한 둘째 날은 현대식 오케스트라의 배치와 비슷하게 트럼펫과 목관이 중앙 뒤편으로 옮겼다. 팀파니는 오른쪽으로 이동해 오르간 옆쯤에 자리 잡았다.

첫날 연주가 끝난 뒤, 마에스트로 가디너는 한국 청중의 열광적 환호에 몹시 흡족하셨다 한다. 그 덕에 둘째 날은 공식적으로 사인회가 열렸고, 엄청난 줄이 이어졌다. 모차르트 레퀴엠 뒤에 앵콜곡이 있을 리 만무하다 생각하고 일찍 나가 줄을 서길 잘했다. 들고온 음반이 없어서 프로그램북 속 그의 사진에 사인을 받았다. 내년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들고 내한한다는데, 두 번 이상 가야겠다.
이현식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