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참된 마음의 결혼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으리.
사랑은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고
사랑하는 이가 멀어진다고 멀어지는 게 아니다.
아니,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지표
거센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떠도는 배들을 인도하는 별이니
높이는 잴 수 있어도 진가는 헤아릴 수 없도다.
사랑은 시간의 어릿광대가 아니라
장밋빛 입술과 뺨이 세월에 시들어도
사랑은 시간의 짧은 흐름에 변하지 않고
심판의 끝까지 견디어 내리라.
만약 이것이 틀린 생각이라 입증된다면
난 쓰지 않았고, 누구도 사랑한 적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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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 116번째 작품입니다. 윌리엄 워즈워스를 포함한 많은 이가 “셰익스피어 최고의 소네트”라고 극찬했지요. 서양에서는 ‘참된 마음의 결혼’이라는 명구 덕분에 결혼식에서 이 시를 자주 낭송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시를 통해 참된 마음의 결합을 찾는 사람들을 무한히 응원합니다. ‘참된 마음의 결혼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첫 구절은 마치 사제의 설교 서두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통 기독교의 혼인 예식에서는 두 사람의 결합을 가로막을 장애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밝히라고 요구하지요. 이 대목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결혼식에서 “이 결혼이 법적으로 성사되지 못할 장애가 있으면 지금 고백하라”고 신랑 신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관례가 점차 신랑 신부만이 아니라 하객에게도 묻는 형식으로 바뀌었다는군요. “이 결혼이 성사되지 못할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지금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조용히 있으라.”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최고 권위자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첫머리의 강력한 선언에 이어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곧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거나/ 사랑하는 이가 멀어진다고 멀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떤 불가피한 변화도 참된 사랑을 흔들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가 떠난다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지표’이며 ‘거센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떠도는 배들을 인도하는 별이니/ 높이는 잴 수 있어도 진가는 헤아릴 수 없도다’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별은 망망대해의 선원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북극성을 가리킵니다. 그 가치를 잘 아는 선원들은 별의 고도를 측정해 항로를 정했지요. 북극성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일정한 방식으로 측정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가치는 다 헤아릴 수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사랑의 장애물인 시간의 침식 문제를 다룹니다. 낫을 든 고전적 형상의 ‘시간’이 세월과 함께 젊음의 ‘장밋빛 입술과 뺨’을 베어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시인은 단호하게 사랑은 ‘시간의 어릿광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사랑은 시간에 예속되지 않으며 ‘심판의 끝’에 이르기까지 견디어 낼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여기서도 전통 기독교 혼인 서약, 부부가 신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서로에게 충실하겠다는 약속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이성과 감성>을 영화로 만든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도 나왔습니다. 메리앤(케이트 윈슬렛)이 비 오는 날 다리를 다친 자신을 도와준 윌러비(그레그 와이즈)와 처음 만나 함께 나눈 구절이 바로 이 시의 앞부분이지요.
로맨틱한 첫 만남에다 낭만적인 시를 좋아하는 두 남녀는 금방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윌러비가 런던으로 떠나게 되고, 이후 부유한 여성과 약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메리앤은 절망합니다.
그때 메리앤이 혼자 언덕에 올라 ‘사랑은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변하고/ 사랑하는 이가 멀어진다고 멀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구절을 다시 읊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 애절한 독백의 행간으로 참된 사랑은 ‘시간의 짧은 흐름에 변하지 않고/ 심판의 끝까지 견디어 내리라’는 시인의 경구가 빗물처럼 젖어듭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