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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이 만든 천만영화...'왕과 사는 남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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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이 만든 천만영화...'왕과 사는 남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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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3월 5일 현재 관객 959만 7,458명을 기록했다. 내일(6일)로 넘어갈 때쯤 1천만 관객을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3.1절 연휴에 세 번째로 역주행(관객수가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가는 현상) 하며 천만으로 가는 상승세가 쉽게 멈추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줬다. 기세가 꺾이는 것은 오히려 천만을 넘기면서부터일 수 있겠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흥행) 망아지’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을 경우가 많다. 한국 영화 천만 관객 달성은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4> 이후 2년 만이지만 평단이나 언론, 무엇보다 산업 내부에서조차 워낙 예상을 못 했던 터라 마치 신기루를 만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는 완전히 뒤바뀐 예측이었다. 두 영화, 곧 <왕과 사는 남자>와 류승완의 신작 <휴민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을 준비할 때, 제작 규모나 장르적 취향 면에서 <휴민트>를 600~800만 명으로, <왕과 사는 남자>를 200~300만 명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막상 시사회로 두 영화를 ‘목격한’ 평론가와 기자들이 <휴민트>를 그보다는 좀 낮게 예측하긴 했으나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승부수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아무도 전망하지 못했다.




    이건 몇 가지 측면에서 향후 매우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평단과 언론이 더 이상 대중의 취향과 감성, 욕망과 욕구를 간파해 내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건 평단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수준이나 안목이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얘기 또한 아니다. 양쪽 모두 서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거나 듣고 있다는 것이다. 평단과 대중이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거의 처음 같은 일이다.

    대중, 특히 상업영화 관객들은 이제 더 이상 평론가나 언론의 영화 리뷰를 읽지 않는다. 그보다는 SNS 댓글 한 줄이 만들어 내는 입소문, 20자 평 등을 통해 영화를 선택한다. 관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소문은 때론 매우 정확하고 무엇보다 정직한 것이지만 때론 상당히 왜곡되어 있거나 편향돼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입소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영화가 좋다, 나쁘다 였을까, 혹은 영화가 재미있다, 재미없다 였을까. 그 어느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도대체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 자체였다. <왕과 사는 남자>가 만들어 낸 천만 관객의 키워드는 바로 ‘대중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 것도, 평단과 언론 내부의 평가까지 엇갈렸던 것도, 이 작품에 대한 시선이 ‘평가’에 몰려 있지 않고 ‘궁금증’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 영화에 관한 좋고 나쁨, 개인의 호불호 여부가 갈리자 그렇다면 스스로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하겠다는 쪽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방점은 ‘스스로 판단하겠다’에 찍혀 있다. 이 영화를 본 천만 가까운 관객들로부터 영화가 뛰어나다느니, 영화가 다소 허점이 많다느니 하는 식의, 한쪽에 치우친 ‘몰빵’ 평가가 비껴가는 모양새인 이유이다. 현재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거의 반반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렇게 대중 관객의 자발성, 주체성의 측면이 급격하게 제고됐다는 점이야말로 <왕과 사는 남자>가 만든 문화 트렌드의 제1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이 평론가, 리뷰어인 시대가 된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예상을 뛰어넘는 천만 관객을 이룬 또 다른 요소로 정치적 차이를 승화(昇華)시킨 측면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세조를 자기 조카를 죽인 악행의 군주로 보는 시각과 조선 초기의 왕권을 강화해 국가의 틀을 공고히 한 측면이 있다는 쪽 모두에 두루 걸쳐 있다. 그러기 위해 장항준 감독은 영리하게도, 영화에 세조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그가 강조한 캐릭터는 한명회(유지태)였다. 대중이 갖고 있던 한명회의 이미지는 키가 작고 왜소하며 음흉한 책략가였으나 장항준 감독은 강골 무인 기질을 지닌 세조의 이미지를 한명회에 덧입히는 쪽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한명회 역할을 맡은 유지태는 거의 100kg에 육박하는 위압적인 모습으로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환골탈태’ 캐릭터의 효과는 세조에 대한 긍·부정 평가를 넘어,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화적 효능감은 정치·사회적 이견을 지닌 양 진영 관객 모두가 자기식 해석으로 영화를 관람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세조가 직접 등장하게 되면 당시의 계유정난(1453)을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빗대는 식으로 진영이 나뉘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영화 속 노산군 단종(박지훈)은 자신의 또 다른 삼촌인 금성대군(이준혁)과의 서신 교환에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쓴다. 영화는 ‘잘못된 역사’가 무엇인지, ‘바로잡겠다’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 의도적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관’으로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포인트 중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이 ‘의도적인 정치적 모호성’이다. 장항준 감독의 기막히게 영리한 상업적 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천만 관객 영화 <왕의 남자>(2005)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한 것도 <왕과 사는 남자>의 주요 마케팅 전략이었으며 그것은 꽤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남자>의 최종 스코어는 1,230만 2,831명이었으며, 현재 <왕과 사는 남자>도 그 수치에 근접하거나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전통적으로 3월은 연중 최악의 비수기(개학 시즌)로 알려졌으나 이 영화는 도통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배우 유해진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왕과 사는 남자>의 또 다른 흥행 포인트는 바로 그 같은 ‘익숙함’이다. <왕의 남자>에서 유해진은 광대 놀이패 리더인 ‘육갑’ 역을, 이번엔 광천골 촌장이자 보수주인(유배지 관리자), 계급으로는 아전 격인 엄흥도 역할을 맡아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빈다. 유해진은 이번 천만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업영화, 특히 다소 복잡한 역사를 지닌 궁중 비화를 볼 때 대중은 익숙한 이야기, 쉽고 친절한 서사, 눈물겨운 신파에 대거 쏠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만든 또 다른 사극 영화 <자산어보>가 심각한 수준으로 흥행 참패를 겪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정약용 얘기가 아닌 정약전 얘기였다는 점, 스토리가 복잡한 내면을 지녔다는 점, 흑백영화여서 젊은 관객들로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꼈다는 점 등이 이유로 지목됐다. 역사극은 다소 단순하더라도 쉬운 이야기 구조를 지니는 게 흥행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해하기) 쉬운 영화이다. 마치 TV 뉴스의 리포트처럼 중학 교육 수준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대사와 감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3위는 각각 <명량>(1,761만 6,141명)과 <극한직업>(1,626만 6,338명), <신과 함께-죄와 벌>(1,441만 4,658명)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어디까지 진격할지 호사가들은 그간의 예측이 다 틀렸던 만큼 지금은 입을 꾹 닫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이번 흥행으로 단박에 메이저 감독 군에 올라섰다. 이 영화는 신생 제작사인 온다웍스와 흥행 제조기로 유명한 제작자 장원석 프로듀서의 회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 모두 막대한 수익을 내게 됐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계가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그 누구도 천만을 예측하지 못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상반기 한국 영화계를 실로 놀라게 하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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