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언론 등에 폭로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학교수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더라도, 피해자의 폭로 내용 자체를 명백한 허위 사실로 단정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영남대 교수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A씨는 2019년 5월부터 같은 대학 동료 교수인 B씨와 국책사업 연구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이후 A씨는 "2019년 6월 회식을 마친 뒤 B씨가 집에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따라와 강간했다"고 주장하며 2021년 2월 B씨를 고소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론화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당초 성폭행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B씨에 대해 불송치 및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A씨의 항고와 재정신청도 모두 기각되면서 B씨의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그러자 검찰은 A씨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A씨를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B씨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A씨의 발언과 게시글이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파력이 큰 언론 보도와 국민청원 등을 활용한 점을 고려할 때 비방의 목적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강간당했다고 한 발언이 허위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사 당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두 사람의 대답이 모두 '거짓 반응'으로 나온 점을 들어, B씨 진술의 신빙성이 A씨보다 무조건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사건 직후 B씨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실수한 것 같다", "걱정 엄청 했다"고 말하고, A씨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답한 통화 내역이 쟁점이 됐다. 해당 통화 이후 A씨가 다른 동료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토로한 점, 연구 사업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곧바로 고소하지 못했다는 A씨의 주장이 당시 정황과 일치한다고 봤다.
대법원도 2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보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