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증권시장이 유례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코스피지수는 이틀 새 1150.59포인트(18.43%) 밀리며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폭락장을 연출했다.
4일 코스피지수는 12.06% 떨어진 5093.54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14.0% 하락한 978.44로 마감했다. 나란히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증시는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탔다. 프리마켓에서 8% 넘게 빠진 코스피지수는 오전 정규장에서 잠시 낙폭을 줄였으나 이란이 사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후계자로 차남(모즈타바 하메네이)을 선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힘없이 흘러내렸다. 이란의 저항이 거세지며 장기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힘을 받으면서다.
외국인 투자자 매도세가 커지자 코스닥시장에서 오전 11시16분, 유가증권시장에서 오전 11시19분에 서킷브레이커(20분간 매매 중단)가 발동됐다.
그동안 한국 증시 상승세가 가팔랐던 만큼 충격이 더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일본 닛케이225(-3.61%), 중국 상하이종합(-0.98%), 대만 자취안(-4.35%) 등 주변국 대표지수는 1~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증시가 밀리더라도 120조원이라는 막대한 대기 자금을 들고 있는 개인투자자가 방어선을 쳐줄 것이라는 기대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공포에 휩싸인 개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796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데 그쳤다. 반대 매매를 피하려고 던진 매물이 낙폭을 키우고, 다시 매도세를 부르는 양상이 반복됐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강자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 본부장은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도 일단 반등을 확인하고 매수하겠다는 심리가 짙다”고 말했다.
환율과 국채 금리는 동시에 치솟았다.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다. 유가, 환율, 금리가 동시에 뛰는 ‘3고(高)’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는 모양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10.1원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476.2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20일(1478.1원) 후 40여 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기간 원화 가치는 2.5% 하락해 엔화(-1.0%), 유로화(-1.8%)보다 절하폭이 컸다. 전날 야간 거래에선 한때 15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2009년 3월 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43%포인트 오른 연 3.223%에 마감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75.78달러(WTI 선물 기준)로 1.77% 추가 상승했다.
살때도 '포모' 팔때도 '포모'…"하락폭 과도, 반도체 분할매수를"
반도체 소부장株 하락폭 작아…지수 ETF는 저가매수 타이밍
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가 국내 증시를 덮치며 코스피지수가 12% 넘게 급락했다. 이틀 새 1150.59포인트 빠지며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893조6437억원이 허공에 날아갔다.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뛰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수 하락폭이 과도하다며 저가 분할매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반도체 소부장株 하락폭 작아…지수 ETF는 저가매수 타이밍
◇“3월엔 박스피 갇힐 가능성”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건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이란이 사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선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고지도자를 제거한 뒤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겠다는 미국 기대와는 다른 결과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10여 척의 선박이 미사일 공격을 받고 불에 탔다는 이란 측 발표가 불안심리를 극대화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8달러까지 치솟고, 미국 물가는 0.8%포인트 상승할 것이란 분석 결과를 내놨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당장 5일부터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날 낙폭이 컸던 것도 반대매매를 회피하기 위한 ‘던지기 물량’이 대거 출회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급락으로 증거금 보충을 요구받은 투자자는 4일까지 납입하지 않으면 5일부터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다.
전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3월 증시는 박스권에서 움직일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전쟁 여파로 3월은 변동성이 커지며 상승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락폭 과도…저가 매수는 유효”
증시가 공포에 휩싸였지만 전문가들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뒤 반등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이틀간 20% 안팎 빠진 상황에서 ‘패닉셀’(공포 매도)에 나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설명이다.무엇보다 코스피지수 하락폭이 과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4일 하락률 12.06%는 2001년 9·11 테러 당시(-12.02%)와 비슷한 폭이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1배로 급락했다. 과거 10년 평균 수준인 10배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20%가량 하락한 것은 이란 전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원자재 공급망 차질 우려를 선반영한 것”이라며 “지수는 일단 5000선 부근에서 저점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도 “역사적으로 지수가 PER 9배 밑으로 내려온 경우 대부분 한 달 이내 낙폭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분할 매수할 만한 시기가 왔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강자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국내주식운용본부장은 “반대매매 물량이 나오면 추가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 주식은 매력적인 가격대까지 내려왔다”며 “상장기업의 이익 증가율이 상향되고 있는 만큼 저가에 분할 매수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저렴해진 기존 주도주를 공략하라는 조언도 내놨다. 강 본부장은 “테크윙 등 일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종목은 이날 하락폭이 제한적이었다”며 “이익이 확실한 반도체주를 공략할 만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57조8905억원으로 전달 컨센서스(156조1228억원)보다 더 높아졌다. 삼성전자(185조3095억원) 역시 전달(183조1146억원) 대비 상향됐다. 안정환 인터레이스자산운용 대표는 “증시의 진짜 위기는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꺾이는 것”이라며 “반도체주의 실적 상향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성미/강진규/맹진규/박주연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