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04일 10:3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계획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계획하는 과정은 전부다(Plans are nothing, planning is everything)”라고 말했다. 이 격언은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오늘날의 경영 환경에서 CFO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원칙이다. 많은 기업이 연초에 수립한 예산(Budget)을 금과옥조처럼 여기지만, 사실 예산은 수립되는 즉시 과거의 기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급변하는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변동성 앞에서 1년 전의 ‘고정된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안개 속에서 고장난 나침반을 들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필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 예산이 단순한 통제가 아닌 ‘전략적 자원 배분의 신호(Signal)’여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 그 전략을 현실이라는 거친 바다 위에서 실시간으로 보정해 나가는 ‘항법 시스템’으로서의 Forecasting(예측)을 논하고자 한다. FP&A의 핵심은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점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따라 기업의 자원을 기민하게 재배치하는 ‘민첩성(Agility)’에 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세 가지 예측의 기술을 제언한다.
첫째, 결과(Output)가 아닌 핵심 동인(Value Driver)을 예측하라
대부분의 기업은 예측을 수행할 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재무적 결과값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벌어진 일이며, 이를 예측하는 것은 백미러를 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세계 최고의 FP&A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아마존(Amazon)의 힘은 ‘인풋(Input) 지표’ 관리에서 나온다.
아마존은 단순히 다음 분기의 매출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매출을 결정짓는 핵심 동인인 유입 고객 수, 장바구니 전환율, 배송 속도 등의 변수를 예측하고 관리한다. 만약 물류 지연이 예상된다면 이는 즉각적으로 미래 매출 감소 시그널로 인식되어 선제적인 대응책이 마련된다. 결과값을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그 결과를 만드는 ‘변수’를 정교하게 예측할 때, 경영진은 비로소 비즈니스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갖게 된다. 우리 기업들 역시 단순한 증분형 예측에서 벗어나,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동인을 식별하고 이를 예측의 모수로 삼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둘째, 회계연도의 장벽을 깨고 ‘연동 예측(Rolling Forecast)’으로 시야를 확장하라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12월 31일이 지나면 예측 시계가 단절되는 ‘회계연도(Fiscal Year)의 함정’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예측 기간이 짧아져 경영진이 눈앞의 연말 실적 달성에만 매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도입해야 할 것이 바로 '연동 예측(Rolling Forecast)'이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구독형(SaaS)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어도비(Adobe)는 고정된 연간 예산의 틀을 과감히 깼다. 그들은 현재 시점에서 항상 향후 5개 분기 또는 18개월을 일정하게 내다보는 연동 예측 시스템을 운영한다. 한 분기가 지나면 예측 모델은 다시 다음 5개 분기를 향해 전진한다. 이 방식을 통해 어도비는 연말이라는 인위적인 종료 시점에 상관없이 시장 변화를 선제적으로 읽고 장기적인 자원 배분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한다. 항상 일정한 미래 시계를 확보하는 기업만이 단기적인 노이즈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셋째, 예측의 목적을 ‘정확성’이 아닌 ‘의사결정의 민첩성’으로 재정의하라
CFO들이 빠지는 가장 흔한 함정은 “예측치는 실제치와 일치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그러나 불확실성 하에서 100%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확성만을 강조하면 조직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목표를 낮게 잡는 ‘보수적 편향(Sandbagging)’이나 수치를 왜곡하는 ‘예산 부풀리기(Budget Gaming)’에 빠지게 된다.
글로벌 리딩 기업들에게 예측의 가치는 정확도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속도’에 있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제안한 ‘관행적 예산 70% 이하 통제’는 바로 이 예측의 기술과 결합될 때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예측 모델이 특정 사업의 위기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순간, CFO는 미리 확보된 30%의 가용 자원을 즉각적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빠른 회복을 보였던 기업들은 실시간 예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케팅 예산과 인력을 수 시간 내에 유망 채널로 전면 재배치했다. 예측이 단순한 기상 예보에 그치지 않고 배의 키를 돌리는 실질적인 조타(Steering) 행위가 될 때, FP&A는 비로소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게 된다.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예측의 기술을 제고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한 [Dr. Lee의 FP&A 인사이트: 예측 민첩성 진단표]를 제안한다. △인풋 기반의 성과 동인 분석, △회계연도에 갇히지 않는 시계의 연속성, △예측과 자원 재배분의 유기적 연결이라는 세 가지 핵심 영역에서 귀사의 시스템을 냉정하게 진단해 보길 권한다. 이 진단은 단순히 '숫자를 얼마나 잘 맞추는가'를 넘어, 변화의 파고를 넘는 우리 기업의 '동적 역량'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하는 전략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예측은 정지된 사진이 아니라 흐르는 영상이다. 정보가 유입될 때마다 끊임없이 가정을 수정하고, 그에 따른 최적의 대응 옵션을 찾아내는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다. 기계적인 수치 준수에 매몰된 정태적 정합성을 넘어,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재무의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y)’을 갖추어야 한다.
성공적인 예측을 통해 항로를 잡았다면, 이제 모든 조직원이 그 방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예측된 전략이 현장의 실행으로 치환되는 핵심 메커니즘, <KPI는 기업가치의 나침반이다>를 주제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성과 관리 체계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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