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에 집착하는 편이다. 인생의 성공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고, 하루의 성공은 아침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려 노력하고, 주말에도 수면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늘리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 한 잔을 마시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팔굽혀펴기, 스쾃, 턱걸이, 30분 인터벌 달리기. 매일 반복되는 운동 루틴을 마치면 반신욕을 하고 냉수욕으로 마무리한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지하 주차장에서 13층 사무실까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서 출근한다.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루틴은 이어진다. 책상 청소, 오늘의 할 일 정리 등등.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활력이 생기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매일 반복하는 것들이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작년 12월 중순, 상장지수펀드(ETF) 마케팅을 위해 호주 시드니 출장을 다녀온 이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한겨울의 한국과 달리 시드니는 화창한 여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새벽마다 야외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날씨는 춥고, 조금 따뜻해지면 공기가 나빴다. 한국에만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했던 환경의 차이가 크게 다가왔다. 상대적인 불행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연말 송년회 일정까지 겹치며 생활은 흐트러졌다. 평소와 다른 생활이 2주일쯤 이어지자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의 활력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던 중 1월 초 주말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내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자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이를 닦고, 작업복을 입는다. 집을 나서기 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햇빛을 느끼고, 자판기에서 같은 캔커피를 마신다.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몰아 현장으로 향하고, 화장실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정성껏 청소한다. 쉬는 시간에는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사진으로 남기고, 저녁에는 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중고 서점에서 산 책을 읽다 잠이 든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조카의 방문이나 동료의 퇴사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겨도, 히라야마는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삶의 의미를 설명하지도, 교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반복되는 하루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듯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나에게 완벽한 하루란 시드니의 여름처럼 특별한 환경 속에 있는 날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에서 반복해 온 평범한 하루라는 것을. 그 깨달음은 나를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여러분에게 완벽한 하루란 무엇인지. 나는 오늘도 나만의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같은 일들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