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한 이정배 작가의 개인전 <생활(生活): Form of Living>현장.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이정배 작가의 시선은 곁에 선 아내이자 동료 작가인 이진주에게 머물렀다. 조각가 이정배에게 이번 전시의 테마인 '생활'은 곧 아내를 매일같이 사랑하는 일이자 그 사랑을 견고한 구조물로 만들어온 20년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작가가 언급한 '쉼의 테이블'이다. 20여 년 전, 변변한 가구 하나 들일 돈 없던 척박한 시절의 유산이다. 당시 만삭의 몸으로 바닥에 앉아 작업해야했던 아내를 위해 이정배 작가는 주변에서 구한 나무판자에 서툰 솜씨로 다리를 달았다. 아내의 부푼 배가 걸리지 않으면서도 화첩을 가장 편안하게 올릴 수 있는 최적의 높이. 그 낮은 상은 배고픈 예술가 부부가 서로를 지탱하며 견뎌온 시간의 증거이자, 이번 전시의 철학이 촉발된 오브제다.
쉼의 테이블 위에는 신작 '대숲 메모꽂이'가 놓여있다. 돌의 무게를 받아 휘어진 천이 초승달을 연상케 만드는 조명 '서있는 흰 등'은 '테이블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이룬다.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가 이정배는 그간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날카로운 조각적 언어로 탐구해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미감을 나무라는 따뜻한 물성에 담아 쓰이는 조형(가구)으로 확장했다. 아내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크기와 손의 동선을 수십 번 관찰해 만든 '진주를 위한 화장대'는 사적인 배려가 어떻게 보편적인 예술적 비례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쉼의 테이블'은 실제 집에서 사용하던 의자와 나란히 놓여 갤러리를 전시장 이상의 생활 환경으로 탈바꿈시킨다.

작가의 집요함은 가구의 보이지 않는 하부 접합부까지 미친다. 모든 제작 과정을 혼자 수행하며 정교한 목구조 방식으로 끼워 맞춘 가구들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성립하는 하나의 독립된 조각으로 존재한다. "가구는 앞면이다"라고 말한 이정배 작가의 의도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여기에 인견을 활용해 건물 사이의 초승달을 형상화한 '서 있는 흰 등'과 삼베 갓을 씌운 '하늘 긴 등'이 전시장 전체에 온화한 빛을 드리우며 머무름의 시간을 확장한다. '진초록'이나 '둘 이상의' 같은 평면 작품들이 가구와 어우러진 풍경은 예술이 고고한 전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생활 그 자체에 있다는 걸 일깨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포기할 수 없는 미감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날 이정배 작가는 "가구가 생활을 빼고 또 어떤 찬란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매일 기대고 앉고 만지는 그 자리에서 모든 예술이 시작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그의 가구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가 무사히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20년 전 아내를 위해 목재를 만지던 청년 작가의 초심은 이제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생활의 증거가 되어 관람객에게 애틋함을 남긴다. 전시는 오는 4월 18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4층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