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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공간] 도시의 품격, 도시의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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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공간] 도시의 품격, 도시의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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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사회학 개념으로만 읽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페이지마다 건축이, 공간이, 나아가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 개념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그 인사이트가 오늘 이 글의 출발점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개인에게만 적용했다. 그러나 나는 읽을 때마다 확신이 깊어졌다. 아비투스는 개인을 넘어, 공간과 건축, 나아가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지문이 도시의 지문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지문이 깊이 쌓일 때 비로소 품격의 도시가 탄생한다.


    오늘 내가 이야기할 도시는 세 곳이다. 파리, 서울, 그리고 부산. 파리는 내가 건축가로서 오랫동안 실무를 익힌 도시이고, 서울은 지금 내가 중심을 두고 활동하는 도시이며, 부산은 나의 고향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들. 그만큼 그 도시의 결을 몸으로 느껴온 곳들이다.

    건축가는 왜 아비투스를 생각하는가


    건축을 한다는 것은 공간을 짓는 일이다. 나는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짓는 것인가.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고유한 습관, 취향, 행동 방식, 가치관. 어린 시절부터 환경을 통해 몸에 배어버린,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행동. 제2의 본성. 그는 이것을 "삶의 지문"이라고 불렀다.



    지문. 참 정확한 비유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공간이 바로 그 지문을 찍는 잉크판이다. 높은 천장의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와 어두운 골방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걸으며 출퇴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진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공간은 아비투스의 토양이다.

    그래서 나는 공간을 설계할 때 항상 묻는다. 이 공간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더 큰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


    도시에도 아비투스가 있다

    도시 역시 오랜 시간 축적된 환경, 역사, 문화, 공간적 경험이 그 도시만의 고유한 성향과 취향을 만들어낸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것.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 그것이 도시의 아비투스다.


    그리고 그 아비투스가 깊고 선명하게 쌓인 도시를 나는 품격의 도시라고 부르고 싶다. 단순히 아름답거나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만의 지문이 세계 지도 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도시. 방문자가 떠난 후에도 오래 기억되는 도시. 살아갈수록 사람을 더 좋은 방향으로 빚어가는 도시.

    글로벌 시대에 도시 간의 경쟁이 심화할수록, 어떤 아비투스를 가진 도시인가가 그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서울과 부산은 어떤 도시의 지문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품격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파리의 아비투스 ? 품격의 도시란 무엇인가

    파리에서 실무를 하며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파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도시 아비투스의 완성형이라는 것을.

    파리의 아비투스는 축적의 미학이다. 오래된 것을 고쳐 쓰고, 켜켜이 쌓인 시간을 자산으로 삼는 도시.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의 주인공인 것은 단순한 보존 정책 때문이 아니다. 속도보다 밀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파리의 아비투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리가 품격의 도시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로컬(Glocal)의 완성이다.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이면서, 동시에 가장 파리다운 도시. 글로벌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정체성을 절대 잃지 않는다. 가장 로컬 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는 역설을 가장 잘 구현한 도시.

    서울과 부산이 파리에서 배워야 할 것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파고들수록 더 세계적이 된다는 그 철학이다.

    서울의 아비투스 ? 연결(Connection)이 만드는 문화자본

    지금 내가 발 딛고 활동하는 도시, 서울. 서울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전통과 첨단이 연결되고, 서울과 세상이 연결된다. 조선 시대 궁궐과 초현대적 마천루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고, 수백 년 된 한옥 골목과 세계 최첨단 IT 인프라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 이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서울만이 가진 고유한 아비투스다.



    그리고 최근 그 문화자본이 가장 선명하게 발현된 장면이 있다. BTS가 경복궁에서 노래하고, 블랙핑크가 한국 전통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세계 무대에 선 것. 수백 년 된 궁궐과 21세기 글로벌 K-팝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 순간, 서울의 아비투스가 세계를 향해 선명하게 폭로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역설. 파리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온 글로컬의 철학을 서울은 문화의 힘으로 단번에 구현해냈다.

    서울이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연결의 단절이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것들이 사라질 때, 서울은 그 독창적인 연결의 감각을 잃는다. 서울의 품격은 그 연결을 얼마나 지혜롭게 지켜가느냐에 달려 있다.

    부산의 아비투스 ? 가능성의 지문

    부산은 나의 고향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아끼는 동시에, 누구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부산의 아비투스는 지형과 바다가 만든 독창성이다. 산과 바다가 공존하고, 좁은 골목과 계단이 만들어낸 독특한 공간 언어. 서울이 연결의 도시라면, 부산은 감각의 도시다. 지형 자체가 공간이 되고, 바다 자체가 문화가 되는 도시.

    부산의 아비투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부산이 가능성의 도시인 이유다. 서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형과 바다와 골목의 결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부산은 더 독창적인 품격의 도시가 될 수 있다. 파리가 파리다움으로 세계도시가 되었듯, 부산은 부산다움으로 세계 지도에 자신의 지문을 찍을 수 있다. 고향을 바라보는 건축가로서 나는 그 가능성을 누구보다 믿는다.

    품격의 도시는 오늘 우리가 짓는다

    비록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개인에게만 적용했지만, 나는 이것이 공간과 건축, 나아가 도시 전체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에 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좋은 공간이 좋은 사람을 만들듯, 품격 있는 도시의 아비투스가 품격 있는 시민을 만들고, 그 시민의 아비투스가 다시 도시를 풍요롭게 한다. 이 순환이 지속가능한 도시의 핵심이다.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떤 골목을 지키고, 어떤 문화를 축적하느냐가 30년 후 우리 도시의 지문이 된다. 품격의 도시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짓는 공간에서, 지키는 골목에서, 쌓아가는 문화에서 조용히 만들어진다.

    도시의 아비투스는 결국 그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의 아비투스가 모여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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