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화와 노년층의 주거 문제의 대안으로 지방 대학의 유휴 부지와 시설을 시니어 주거로 전환하는 모델이 급부상하고 있다. 은퇴자가 대학 캠퍼스 안이나 인접 지역에 거주하며 대학의 도서관, 체육시설,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식이다.
이 같은 ‘대학 기반 주거 모델’ (UBRC :University-Based Senior Living)은 시니어만 모여 사는 고립감을 해소하고, 청년 학생과 교류하며 ‘배우는 노년’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기존 실버타운과 차별화된다.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고, 시니어는 수준 높은 인프라를 누리는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대학 연계한 시니어 주거 '시동'
충남 천안에 있는 남서울대학은 국내 1호 UBRC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산하 비영리 기업 ‘ASU Enterprise Partners(엔터프라이즈 파트너스)’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UBRC 성공 사례로 꼽히는 ASU의 운영 노하우를 한국 현실에 맞게 이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고령화 시대에 부합하는 ‘한국형 UBRC 모델’을 개발하고 관련 산업 생태계 형성에 기여한다는 전략이다.협력 사업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2년간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남서울대 중심의 환경 조사 및 전략 기획, 시범 교육·워크숍 실시로 요약된다. 2단계는 국내 현장 전담 인력 배치, 남서울대 기관 역량 강화, 미국 고령친화대학(AFU) 지정을 추진한다. 마지막 3단계는 UBRC 운영 사전 점검, 거주자 생활 지침 핸드북 개발, 글로벌 고령화 혁신 분야 포지셔닝 등 남서울대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된다.
한국형 UBRC 모델은 고령층의 지속적 학습, 사회 교류, 안정적 주거, 복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복합 주거 플랫폼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성공 사례가 다수 있다. 국내에서도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남서울대 이외에 동명대, 조선대, 신라대, 상지대 등도 UBR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부산 동명대는 서면 인근에 600가구 규모의 UBRC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반려동물학과·승마학과 같은 특화 학과도 신설해 UBRC 입주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방침이다. 문화교양 프로그램을 비롯한 고령 친화 프로그램, 성인 학습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미래융합대학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조선대는 조선대병원 인근에 700여 가구의 은퇴자 주거시설을 계획하고, 시니어타운이 들어설 부지로 조선간호대학 유휴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 대학병원 접근성이라는 강점을 살려 노인의학 전문 기능의 UBRC를 설립해 입주자 개인 주치의 제도와 프리미엄 레지던스 도입, 헬스 디자인센터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신라대는 1000가구 규모의 ‘액티브 시니어 캠퍼스’ 건립을 추진하고 운영을 위한 기초 계획을 수립 중이다. 대학 내 66만1157㎡ 부지에 노인 주거 공간, 실버 케어, 생활체육시설 등을 짓고 시니어에 특화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역활성화 노년층 주거안정 '윈-윈'
UBRC의 가장 큰 의의는 ‘배움이 멈추지 않는 노후’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은퇴자는 대학 강좌를 수강하며 젊은 세대와 교류하고,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감을 완화할 수 있다. 대학은 유휴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재정 다변화와 브랜드 경쟁력 강화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대학병원이나 협력 의료기관과 연계한 건강관리, 캠퍼스 내 문화·체육시설 이용 등은 고령자의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돌봄·의료·문화 서비스 수요 증가로 인한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UBRC는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대학과 시장 자율에 따라 12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노년을 ‘요양 대상’이 아니라 ‘학습 공동체의 일원’으로 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대표 사례인 라셀 빌리지(Lasell Village)는 라셀칼리지와 협약을 맺어 연간 200만 달러 수익을 창출한다. 입주민은 대학 강좌, 문화시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며 ‘배우며 사는 노후’를 실현한다. 교육·문화·의료가 결합된 UBRC의 원형 모델로 평가된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거주자가 매년 평균 450시간(주당 약 9시간)의 교육 및 신체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배우지 않으면 입주할 수 없다(Learning is not a program, it’s a condition of living)”는 철학을 갖고 있다.
플로리다의 오크 해먹의 입주민은 플로리다대의 도서관과 미디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미라벨라(Mirabella at ASU)는 애리조나주립대 캠퍼스 내 있다. 입주민은 대학생과 동일하게 도서관, 강의실을 공유한다. 중소도시의 대학이 자체 생존을 위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대학은 교육·브랜드를 제공하고, 운영은 전문 시니어 하우징 기업이 맡는다. UBRC의 소유와 경영은 운영사와 입주자의 것이 되고, 프로그램 운영은 대학과 협조하는 것이다. 대학은 브랜드와 교육 자원을 제공하고, 운영은 전문 시니어 하우징 기업이 맡아 재정 리스크를 피한다.일본도 와세다· 릿쿄(RSSC)·메이지 등 20여 곳이 60세 이상 입학자에게 시험 면제 및 등록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민간 활용한 비용절감 등 활성화해야
우리나라 대학 부지는 법적으로 교육용 재산으로 관리되고 교육부의 규제에 따라 주거시설이나 임대사업 등 수익화가 제한된다. 지방 대학 부지는 자연녹지지역이나 계획관리구역 등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아 용도 도입 및 용적률, 건폐율, 층수 등에 제약을 받는다. UBRC가 자리 잡기 어려운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이다.건국대의 ‘더클래식 500’은 고급 실버타운(유료 양로시설)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교육 연계와 세대 교류 측면에서는 UBRC의 핵심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국립 경북대 안동캠퍼스 역시 2020년경 UBRC를 검토했지만 재정 부담과 행정 절차, 불확실한 수요 예측 등의 이유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는 2024년 7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에서 대학 유휴시설을 시니어 레지던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용도 변경 및 용적률 완화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륙아주 등 로펌들도 시니어 전문팀을 별도로 구성해 UBRC사업을 공략하고 있다.
UBRC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용 구조, 지자체와 협력, 규제 완화, 입주자를 위한 돌봄 서비스 체계 구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65세 인구가 전 국민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은퇴한 시니어 세대에게 건강과 주거가 핵심 이슈입니다. ‘집 100세 시대’는 노후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택 솔루션을 탐구합니다. 매주 목요일 집코노미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