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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중견국의 생존전략은 상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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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중견국의 생존전략은 상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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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핵협상 압박 수단으로 이란을 공격했다. 이번 사태는 최근 뮌헨안보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드러났듯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법이나 유엔 체제와 같은 규범보다 힘을 통한 국제질서 재편을 우선시함을 재차 보여줬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이 일련의 무력 사용을 ‘문명을 지키기 위한 서방의 투쟁’이란 프레임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스스로 쌓아 올린 자유 질서의 가치와 제도까지 외면하는 태도다. 문명의 우월성과 적대 진영에 대한 도덕적 선포로 일관하다 보면 현실적 균형 감각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과도한 자기 확신과 독단적 일방주의의 확대는 이라크 전쟁에서처럼 국제적 신뢰 상실과 미국 사회 분열을 낳는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 20세기 미국·소련 냉전 시대와 달리 미국·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영국·유럽연합(EU)·캐나다·호주·인도·일본·한국·인도네시아·브라질·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 등 이른바 ‘중견국(middle powers)’이 빽빽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그리는 순간, 중견국의 자율공간은 인정되지 않고 ‘내 편이냐 아니냐’라는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러나 유럽만 보더라도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중견국은 어느 한 진영에 속하길 거부하며 사안별로 협력 대상을 바꾸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안보를 넘어 무역·기술·금융·에너지 등 분야로 확산일로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트럼프 행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냉혹하다. 중견국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최대 교역 파트너로 두고 있고 모든 영역에서 두 나라와 깊이 엮여 있다. 일례로 독일은 수출에서 중국,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든 대미·대중 관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진영 이동’을 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견국의 움직임은 단순한 줄타기가 아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뮌헨안보회의 후 베이징으로 날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정한 협력’을 약속하면서도 유럽의 안보는 여전히 대서양동맹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프랑스·캐나다·영국에 이어 최근 중국을 방문한 네 번째 서방 정상이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견국 간 네트워크 강화 추세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중견국이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강대국의 메뉴(먹이)가 된다”며 중견국 간 긴밀한 공조를 주창했다. 카니 총리는 그 후 인도·호주·일본 순방으로 중견국 간 네트워크를 구체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올해만 해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한국과 일본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인도와 한국을 방문하는 등 중견국 간 협력 강화 움직임이 뚜렷하다. 강대국 중 한쪽에 ‘올인’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새 안전망을 구축해 ‘제3의 길’을 찾는 중견국의 집단적 자구노력이다.


    한국은 어엿한 중견국 대열에 올라 다른 중견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중견국에 필요한 것은 교역·투자·기술 협력의 다변화를 통해 스스로 협상력을 높이고 어느 강대국이든 일방주의로 치달을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아쉬운 점은 그간에도 중견국 간 상호 협력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많은 경우 외교적 이벤트로 끝나곤 했다는 사실이다. 정책의 일관성과 사업의 안정성, 상대국 우선순위에서 미흡했기 때문이다. 중견국 간 상호 협력이 열어줄 전략적 공간은 선언이 아니라 세밀한 계획 속에서 사업을 구체화해야 비로소 확보된다. 최근 한국은 브라질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해 핵심 광물, 친환경 인프라, 디지털 규범, 방위산업, 우주 협력 등 부문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는 이해관계의 그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광물 동맹’과는 별도로 글로벌 사우스와 직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과거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행이다.

    세계는 이미 다극화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러나 다극화가 곧바로 중견국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초강대국 경쟁이 격화할수록 선택의 압박은 더 커진다. 중견국 간 연대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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