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우! 디스 이즈 소 컨템포러리!(와,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티노 세갈(50)의 전시를 찾은 관객들은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란다. 안내 직원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관객 주변에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슬며시 다가온 누군가가 뜬금없이 말을 건넨다. “커피와 함께 내 하루가 시작되죠.” 전시장 안쪽은 더하다. 자전거를 타고 거꾸로 움직이며 균형을 잡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공을 머리 위에 올리고 묘기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키스’. 전시장 안쪽에서 두 남녀가 바닥에 누워 서로를 껴안은 채 천천히 키스하며 하루 종일 움직인다.
특이한 건 전시장에 작가가 남긴 ‘물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 세갈은 미술관에 총 8점의 ‘구성된 상황’이라고 이름 붙인 일종의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해석자’라 불리는 수십 명의 배우와 무용수가 작가의 구두 지시를 기억한 뒤 이를 수행한다. 도록, 작품 설명 패널, 홍보용 이미지, 기념품 등은 일절 없다. 관객의 인증샷조차 금지돼 있다. 전시를 본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 작품을 보고 경험한 기억뿐이다.
회화나 조각을 넘어 영상, 음악, 향기, 인공지능(AI) 등으로 끝없이 현대미술의 지평이 넓어지는 이 시대에 세갈은 가장 오래된 매체인 ‘기억력’만을 사용한 예술로 현대미술계의 최정상에 섰다. 201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전체를 비운 뒤 오직 해석자들의 대화만으로 채운 전시를 열어 각광받았다. 세갈을 만나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물질 없는 예술, 인증샷도 금지
세갈은 철저히 ‘물질’을 거부한다. 작품을 판매할 때조차 그렇다. 작품에 대한 설명서와 관련 사진도 없고, 계약서도 없다. 공증인이 입회한 자리에서 세갈이 작품을 입으로 설명하고 구매자와 악수하면 거래가 끝난다. 강박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질 문명을 혐오하는 건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해왔어요. 저는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질이 없어도 사람들은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야구를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때, 야구 규칙이 적힌 책을 쥐어주는 대신 말로 알려주고 실제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잖아요. 인류 지식의 많은 부분은 기록이 아니라 그런 ‘전승’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제 작품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지 않으면서도 예술을 하고 싶다’는 고민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아닌 길거리에서 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최근에는 야외 작업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말 그대로 거리 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하지만 길거리와 미술관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요. 길거리에서 벌이는 작업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다릅니다.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경험하겠다’고 결정하고 오는 곳이니까요. 집중할 준비가 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작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장점입니다.”
▷홍보용 이미지도 없고 인증샷도 금지돼 있습니다. 왜인가요.
“사진은 제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해석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그 상황 속에서 관객이 직접 겪은 경험과 관객입니다. 사진과 영상을 쓰느니 차라리 ‘누군가 나를 향해 돌아서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고 글을 쓰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 편이 훨씬 더 작품의 핵심을 잘 설명하고, 읽는 사람에게 작품을 이해할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기록이 없으면 당신의 작품이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기록 없는 작품이 생소하겠지만, 다른 예술의 영역에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발레를 생각해 보세요. 조지 발란신의 발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가까이 됐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발레는 사라지지 않고 전승됐어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림도 얼마든지 손상되거나 파괴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미술관에 들어와 렘브란트의 그림을 주먹으로 치거나, 바넷 뉴먼 작품에 페인트를 끼얹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잖아요. 물질이라고 영원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실물이 있는 작품보다 제 작품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라는 미술관 입구의 작품은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합니다. 작품을 본 관객의 기억 속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작가라면 작품이 영원히 남길 바라지 않나요.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은 유한합니다. 모든 게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작품이 끼치는 영향과 효과는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영향은 영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미국의 작은 갤러리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지금 전 세계 모든 곳의 실내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작품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게 영향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제 작품이 후배 예술가나 이 세상에 어떤 영향이라도 잠시나마 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술이란 공간을 만드는 것”
세갈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물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 시스템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몸이라는 비물질적 매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 셈이다. 두 학문의 교차점에서 지금의 작품이 나왔다.
▷어떻게 예술을 하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삶의 의미에 대한 거대한 성찰에 끌렸습니다. 카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에 나가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예술이라는, 삶에 대한 세속적인 성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18살에 베를린으로 갔을 때는 실험 연극과 무용 공연에 매료되면서, 예술이 ‘나와 세상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예술가를 꿈꾸게 됐습니다.”
▷작품은 어떤 뜻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예술은 ‘이건 이런 뜻이니 이렇게 감탄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삶의 복잡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읽는 방식을 제안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을 생각해 봅시다. 그의 작품이 실제로 뭘 말하는지 정확히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작가 자신조차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캠벨 스프 캔 그림은 확실히 현대 산업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고, 이로 인해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자아상을 바꿔놨습니다. 흥미로운 건 워홀이 인터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냥 작은 목소리로 ‘예’, ‘아니오’라는 대답만 했지요.”
▷하지만 당신은 꽤 친절히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설명을 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니까요. 하지만 저 역시 단정적으로 제 작품을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만든 틀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작가와 작품의 역할이니까요. 워홀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나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처럼 텍스트를 쓰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그 철학자들의 텍스트보다 워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일상에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자신은 일종의 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두 수선공이 가죽 조각을 하나로 엮듯이, 저도 여러 요소들을 엮어내는 사람이에요. 물론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 리허설을 준비할 때도, 저녁 7시가 넘어가면 피로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모든 작품의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아직 더 다듬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도 느낍니다.”
오직, 당신의 경험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해석자’들은 수십 대 1 경쟁률의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일반인도 있지만 대개 무용 전공자들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한다. 관객이 갑자기 끼어들 수도 있다.
▷해석자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나요.
“이번 작품에는 예술 자전거 세계 챔피언 선수 출신의 해석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어요. ‘넘어져도 괜찮다. 이건 예술이다. 세계 선수권 대회처럼 점수를 깎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수가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인간적이고 취약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거든요. 다만 너무 자주 실수하면 작품의 리듬이 깨지니까 집중해달라고 요구하기는 합니다. 반대로 너무 능숙해서 흔들림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더 움직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관객이 공을 빼앗거나 방해하면요.
“상관 없습니다. 상황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그저 어딘가로 흘러갈 뿐입니다. 다만 리움미술관 측에서 제지할 수도 있겠네요. ‘키스’ 작품 옆에서 ‘우리도 해보자’ 하면서 키스하는 커플은 몇 번 본 적 있어요.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이 넓지 않기도 하고, 한국 문화에 그런 행동이 맞는 것 같지는 않아요.”
▷몰래 사진을 찍는 관객들이 분명 나올 텐데요.
“휴대폰은 좋든 싫든 우리 몸의 연장선이 됐습니다. 사진을 찍는 건 그들만의 보는 방식이에요. SNS에 올라온 사진을 일일이 내려달라고 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요. 하지만 저는 그 사진들이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사진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다시 전시되는 편을 훨씬 선호해요. 제 작업은 단편적인 2차원 사진이 아니라 3차원적인 경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2007년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보여줬던 작품이 지금 리움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의 작품을 따라하는 틱톡 챌린지가 만들어진다면요.
“기쁠 것 같습니다. 예술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유효성을 가질 때 존재할 수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그 작품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니까요.”

세갈은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온 마음과 정신으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해 달라고. 대신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는지는 당신의 자유고,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일부 작품은 전시 시기에 따라 교체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