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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초상 위해 광부의 삶 자처한 황재형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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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초상 위해 광부의 삶 자처한 황재형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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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거장 황재형 화백이 27일 새벽 5시 별세했다. 향년 74세. ‘광부 화가’라는 수식어로 대변되는 화백은 막장에서 직접 경험한 노동의 고단함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성장과 개발만을 좇아 달려온 1980년대 시대의 아픔을 돌아본 작가다. 1982년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광부로서의 삶을 자처했다. 실제 막장에서 일하며 탄광 노동의 고단함과 위험을 몸소 겪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광산촌의 일상과 노동 현장의 긴장, 공동체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화백은 3년간의 광부 생활 이후에도 30년 넘게 태백에 머물며 그곳의 공기와 흙을 캔버스에 담았다.
    황 화백은 산업화 이면에 놓인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주요 화두로 삼았다. 당대 사회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로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는 탄광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광부의 모습을 담았고, 광산이 쇠락한 1990년대는 태백의 흙과 탄가루를 섞어 폐광촌을 캔버스에 옮겼다. 2000년대 들어서는 검은 머리카락을 활용해 만든 광부의 초상으로 화단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1952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화백은 1981년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당시 민중미술 소그룹 ‘임술년’을 결성하고, 활동 중 그린 ‘황지330’(1981)으로 제5회 중앙미술대전(1982)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그간 쌓아온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개인전 ‘회천’을 열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7시 40분이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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