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251.87

  • 333.00
  • 5.96%
코스닥

1,102.28

  • 52.39
  • 4.54%
1/2

바로바로 먹어치우는 샌드위치도 ‘박제’가 되나요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바로바로 먹어치우는 샌드위치도 ‘박제’가 되나요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박제는 생물, 특히 동물을 보존하는 기술이다. 영어로 ‘taxidermy’인데 ‘배치’를 뜻하는 ‘τ?ξι?’와 ‘피부’를 의미하는 ‘δ?ρμα’의 그리스어 조어다. ‘피부의 배치’라는 의미로 대략 50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18세기엔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 식민지로 삼았던 서인도제도 같은 곳의 새 등을 보존하는 데 쓰였다.

    이런 박제의 의미가 요즘은 확장되었다. 인터넷, 특히 SNS에서는 누군가의 발언 등을 스크린 캡처를 통해 보존하는 걸 박제라 칭한다. 물의를 빚을 수 있는 내용이라 당사자가 지운 글의 증거를 남겨둔다는 의미로 쓰인다. 인신공격을 위한 빌미로 쓰이는 탓에 원래의 박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전유 되어 쓰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여기 또 다른 유형의 박제가 있다. 바로 현대미술가 알렉스 프로스트(Alex Frost, 영국)의 샌드위치 프로젝트다. 애초에 음식은 생물이 아닌데 어떻게 처리하든 박제라 규정할 수 있을까? 맞다, 음식은 정확하게 생물은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름의 생명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아주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 부패되면 우리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서 의미를 잃으므로 그때까지는 살아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프로스트의 박제는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편이다. 음식을 틀에 넣고 녹인 수지(resin)를 부어 굳힌다. 일단 외기로부터 차단되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부패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수지의 외피는 투명하므로 음식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도 있다. 인터넷의 무엇인가를 이미지 캡처로 보존하는 게 박제라 통하는 요즘 현실이라면 이 또한 그렇대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샌드위치일까? 샌드위치는 같은 이름의 영국 백작 4세 존 몬태규가 도박 그러니까 카드 게임을 하면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한 결과였다. 그의 소위 발명 이전에도 빵 사이에 다른 식재료를 채우거나 끼운 음식은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샌드위치라는 용어 자체가 1762년 이후 런던에서 퍼져나가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이처럼 음식 가운데서도 빨리 먹어 금방 사라지는 샌드위치를 수지에 넣어 박제함으로써 일종의 모순된 영속성을 불어 넣는 게 프로스트의 의도다.



    한편 원래의 핵심 정체성을 감안하면 오늘날 특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샌드위치는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일단 빵부터 두꺼운 경우가 상당히 많을뿐더러 식재료를 엄청나게 끼워 넣어 매우 크다. 따라서 그 옛날 샌드위치 백작의 의도대로 먹기란 펠리컨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샌드위치가 무서워 나는 대체로 직접 만들어 먹는데 무엇보다 균형이 중요하다. 모든 탄수화물, 특히 밀가루 외피로 이루어진 음식은 부재료와 균형이 잘 맞아야 맛있다. 비단 샌드위치가 아니더라도 만두, 멕시코 음식인 타코나 부리토 등도 그렇다. 그래서 샌드위치를 만들 때에는 설계를 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한다. 빵은 대체로 기성품으로 양(혹은 부피나 두께)이 정해져 있으니 내용물도 그에 맞춘다.

    말하자면 편의점 샌드위치가 언뜻 빈약해 보이더라도 사실 균형이 잡혀 있으니 기준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사각형의 샌드위치용 식빵이라면 가장자리를 잘라낼지 여부로만 고민하면 되는데(가장 잘 익어 맛있는 부분이므로 나는 그대로 둔다), 바게트 등 등이 솟아오른 빵이라면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 부풀어 오른 부분은 그만큼 속살의 양이 많으므로 조금 긁어 덜어내야 균형이 잡힌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배가 고프다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바로 먹으면 사실 최선의 맛을 누릴 수 없다. 사이에 채운 재료에서 수분이 좀 나와 빵이 적당히 누그러지고 전체가 어우러져야 완결된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따라서 점심으로 먹을 거라면 아침, 혹은 여유가 없다면 전날 잠자기 전에 만들어 두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프로스트의 박제된 샌드위치는 영원히 썩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산소로부터는 차단되지만 음식 자체가 원래 품고 있는 수분은 그대로 있다. 따라서 혐기성 세균이나 음식의 효소 등으로 인한 부패를 피할 수 없다. 가스 탓에 팽창해 수지에 균열이 일어나거나 부패한 액체가 새어 나올 수도 있다. 박제가 아니라 볼 수는 없지만 그 상태를 영영 지속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