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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술 도둑 못 막는 '반쪽 간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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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술 도둑 못 막는 '반쪽 간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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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 사형까지 내릴 수 있다고 포장만 하면 뭐합니까. 기술 유출범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갈 텐데요.”

    쉼 없이 터지는 기술 유출을 막아낼 방패가 될 것으로 기대된 간첩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26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숨부터 쉬었다. “산업기술 유출 사범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쥐었다”는 정치권 자평과는 딴판이었다.


    1953년 제정된 이후 73년 만에 바뀐 간첩법 개정안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혔다. 기업들이 걱정하는 건 해외 민간기업이 과연 여기에 해당하는지다. 법조계는 ‘이에 준하는 단체’에 순수 해외 민간기업이 들어갈지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엄격한 해석을 원칙으로 삼는 형사법 특성상 수사기관이 외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령이나 자금 개입을 입증하지 못하면 민간기업에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려워서다. 이 경우 산업기술보호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가중 처벌해도 형량은 6년이 최대다. 핵심 인력이 수십 배 연봉을 약속받고 중국 등 경쟁국 기업으로 넘어가 국가 핵심 기술을 빼돌려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외국은 다르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에 따라 투트랙 처벌망을 가동한다. 외국 정부의 개입이 입증되면 경제간첩죄를 적용해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리고, 단순 민간 유출로 판단되더라도 영업비밀 침해죄를 적용해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대만 역시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외국 정부의 지령이나 자금 개입 여부를 묻지 않고 유출 지역 자체를 요건으로 삼았다. 중국, 홍콩, 마카오 등 외국에 유출된 사실만 입증되면 최대 징역 12년과 벌금 1억대만달러(약 45억원)를 선고한다.


    처벌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간첩법 개정은 2004년 17대 국회 때 처음 논의됐다. 이후 새 국회가 열릴 때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가 싸우느라 번번이 무산됐다. 그사이 최근 5년간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의 경제적 피해 추산액은 23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3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고 한 혐의로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재판에 넘겨졌고, 전직 SK하이닉스 직원은 A4 용지 4000장 분량의 핵심 기밀을 빼돌려 중국 화웨이로 이직했다. 이들 두 사람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지만, 바뀐 간첩법을 들이밀어도 국가 개입을 입증하지 못하면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을 받게 된다. 우리 기업이 피와 땀으로 일군 핵심 기술을 지키려면, 기술 유출범이 숨을 곳이 없는 강력한 경제안보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산업계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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