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가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기준 밥 한 끼에 1만원으로는 감당이 힘들다. 서민음식이 점점 사라지고 소비자들은 부담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도 소비자가 선택하는 음식은 늘 있다.
비싼 이미지의 음식이 시간이 지나 착한 가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반대로 서민음식의 대명사였던 메뉴들이 비싼 음식이 되기도 한다.
지나고 보니 ‘혜자’
과거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여겼던, 이른바 '창렬'이라 한 일부 음식들이 시간이 지나 오히려 '혜자'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혜자는 저렴한 가격에 양이 많을 때 쓰는 은어다. 배우 김혜자가 과거 편의점 도시락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당시 해당 도시락이 합리적인 가격에 양이 매우 푸짐한 데에서 유래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가수 김창렬이 광고 모델로 활동한 ‘김창렬의 포장마차’는 비싼 가격에 양이 적어서 혜자 도시락과 비교가 됐다.

동대문엽기떡볶이(엽떡)가 지난 2009년 대표 메뉴 ‘엽기떡볶이’를 1만4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엽떡은 2010년대 중반 단순 떡볶이를 넘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많은 비판도 따랐다. 떡볶이에 토핑 한두 가지를 추가하면 2만원 돈이었다. 길거리 서민음식의 상징이던 떡볶이가 프리미엄화되는 것에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김밥 한 줄이 평균 2500원 수준이었던 점을 보면 엽떡은 소비자가 마음대로 먹을 수는 없었다.
엽떡 제조사 핫시즈너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엽기떡볶이’ 가격을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오늘날 외식 물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물가가 오르고 있다. 밥 한 끼는 1만원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변하지 않은 엽떡 가격을 두고 가성비 음식이라는 평이 따른다.
핫시즈너는 대표 메뉴 '엽기떡볶이'를 3~4인분 양으로 안내한다. 토핑을 추가해 2만원대 초중반의 가격을 넷이서 나누면 인당 6000원 미만이다. 이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하는 셈이니 ‘혜자’라는 평이 따른다. 2명을 위한 ‘2인 엽떡’ 메뉴도 있다. 가격은 9000원이다.
혼자 먹더라도 서너 번에 나눠 먹을 수 있어 실속 있다는 의견도 따른다. 인터넷커뮤니티에 한 이용자는 “엽떡이 진짜 혜자”라며 글을 게시했다. “성인 여자 기준으로 엽떡 양이 3~4인분이라 혼자 시키면 서너 번 나눠먹을 수 있다”고 말하며 “다른 떡볶이 가게들은 죄다 물가상승으로 9000원 가격에 1~2인분을 파는데 엽떡은 양이 많아 합리적이다”고 덧붙였다. 핫시즈너는 "푸짐한 양을 함께 나눠 먹는 메뉴"를 브랜드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강조했다. 또 "현재 대표 메뉴 가격에 대해 인상 계획이나 시점이 결정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원할 때마다 사먹기 부담스러웠던 또 한 가지 음식은 족발이다. 족발은 일반적으로 중(2~3인)과 대(3~4인) 사이즈가 있다. 족발 프랜차이즈 ‘뽕나무쟁이 족발’(뽕족)의 경우 작은 메뉴가 4만2000원, 큰 메뉴가 4만7000원이다. 작은 사이즈를 3명이서 먹으면 인당 1만4000원이다. 또 큰 사이즈를 4명이서 먹으면 한 사람당 1만2000원 미만의 가격이다. 육류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선택지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이 따른다.
3대 족발집 중 하나로 알려진 성수족발의 경우 대사이즈가 5만원이다. 4명이 먹을 경우 1만3000원 미만의 가격인 셈이다. 다른 육류 가격을 보면 삼겹살이 1인분에 2만원을 웃돌고 곱창은 3만원까지도 넘나든다.
최근에는 구구족과 같은 저가 족발 프랜차이즈도 늘어나고 있다. 2인 정도의 양을 2만원대에 판매한다. 쌈과 양념을 제외하고 족발만 원할 경우 2만5900원에 주문할 수도 있다.
과거 ‘치느님’으로 불린 치킨도 최근 혜자라는 평이 따른다. BHC의 경우 기본 메뉴 ‘해바라기 후라이드’를 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네네치킨 대표상품인 ‘후라이드치킨’도 2만원이다. 후라이드참잘하는집(후참잘)은 후라이드치킨을 1만8000원에 판매한다. 과거 1만원대 중반이던 치킨 가격에 비해 올랐다고는 하나 2명이 나누면 인당 1만원 이하의 값이다.
대학생이나 자취생에게 생선회는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최근에는 저가 횟집 프랜차이즈가 생겨나고 있다. ‘속초어시장’에서는 광어회 1인분을 1만원대에 판매하기도 한다. 2인이 먹는 소사이즈는 2만원 중후반에 사먹을 수 있다. 과거에는 최소 4만원(당시 물가)은 지불해야 작은 사이즈를 먹을 수 있었다. 이에 회도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간다는 분석이 따른다.
서민음식 맞나
반대로 서민음식이라 불리던 품목들이 가격이 비싸져 더 이상 서민음식이 아닌 경우도 있다.
지난 2000년대 중후반 피자스쿨이 치즈피자를 5000원에 내놓으며 ‘5000원 피자’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 때문에 피자헛,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 등이 타격을 받았다. 피자스쿨은 물가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피자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과거 5000원 하던 치즈피자가 현재 8900원이다.
피자스쿨과 엽기떡볶이 모두 새로운 메뉴들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다만 두 브랜드는 메인 상품에서 차이를 보인다. 새 상품 출시에도 엽떡 소비자들은 꾸준히 기본메뉴인 ‘엽기떡볶이’를 가장 많이 찾는다. 반면 피자스쿨의 경우 기본메뉴인 ‘치즈피자’를 찾는 고객은 비교적 많지 않다.
피자스쿨에서 맛있는 메뉴들을 추천하는 글과 영상이 올라온다. 까르보네피자, 퀘사디아피자, 깐쇼새우피자 등 대부분이 1만5000원을 웃도는 가격이다. 거기에 치즈바이트 등 토핑을 추가하고 음료수와 피클도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가격은 2만원을 쉽게 넘는다. 소비자들은 이 지점에서 피자스쿨을 가성비 선택지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 휘청거렸던 피자브랜드들이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소비자들은 “비교할 필요도 없이 피자스쿨이 저렴했는데 이제는 도미노나 피자헛에 쿠폰 적용해서 먹는 게 더 싸네” 라며 아쉬움을 보인다.
사실 서민음식의 대표 품목은 김밥이다. “김밥 먹어가며 일한다”라는 말도 있듯 헝그리정신의 표본이기도 하다. 과거 ‘김밥 한 줄은 1000원이 국룰’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먼 과거 얘기도 아니다. 2000년대 중후반 이야기다.
김밥 가격이 점점 오르더니 최근에는 3500원 밑으로는 김밥 한 줄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평균 3500원에 판매한다. 싸다김밥은 3800원, 정성한줄은 4200원, 바르다김선생은 4900원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일반 식당에서 김밥 한 줄 가격이 5000원을 웃돈다. 서민음식의 상징이던 김밥+라면 세트가 1만원인 셈이다.
김밥의 가격 상승에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겁다. “김밥은 인건비가 낮던 시절에 가능했던 서민 메뉴”라며 “현재에는 서민 주머니로는 감당이 힘든 메뉴가 돼 가고 있다”는 반응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김밥 두 줄에 1만원 주고 먹을 바에는 직접 해먹겠다”는 댓글에도 반응이 뜨거웠다.
또 하나 대표 서민음식은 삼겹살이다. 국내에서 항상 소고기와 비교되며 삼겹살은 경기에 관계없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다. 최근에는 “삼겹살은 한 턱 쏘고도 생색 못 내는 음식이 됐다”는 말이 생겼다.
과거 200g에 1만원대 초반이던 삼겹살이 최근에는 2만원까지도 오르고 있다. 삼겹살 1인분이 200g인 곳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60g이라 했을 때 넷이 가면 6인분 정도를 시킨다. 냉면, 된장찌개, 술 등을 추가하면 순식간에 20만원 돈이다.
이에 “삼겹살마저 무너지면 서민은 진짜 소주 한잔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라며 누리꾼들은 아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정원 인턴기자 jason2014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