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오프뷰티 광장시장점.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관광객이 뒤섞여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 대기 줄에는 20대 여성부터 50대 남성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적과 세대를 가리지 않은 인파가 몰렸다.가게 내부는 더 붐볐다. 이날 단 하루만 진행하는 ‘바스켓 데이’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3만9000원에 바스켓을 구매해 바스켓 안에 원하는 제품을 무제한으로 담을 수 있다. 다만 뚜껑이 닫혀야 성공이다. 3만9000원에 무제한으로 제품을 담아 구매할 수 있는 가성비 이벤트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부피가 작고 비싼 것 위주로 담아보자.”
“색조부터 가보자.”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20대 여성 손님 두 명이 대화를 나눴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원하는 제품을 최대한 담기 위해 미리 ‘전략’을 세우는 모습이었다. 매장 안에는 VT, 롬앤부터 설화수까지 유명 브랜드와 처음 보는 브랜드 제품들로 가득했다. 기초 제품부터 색조, 뷰티 디바이스, 건강식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인기 제품인 ‘VT PDRN 리들샷’은 원가인 6만8000원에서 약 56% 저렴한 3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VT PDRN 데일리 마스크(30매)’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2만4000원에 판매된다. 오프뷰티에서는 1만5000원이었다.
입장 전 전략을 세우던 20대 여성 손님들이 바스켓을 가득 채운 뒤 뚜껑을 닫고 결제에 성공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평소에 VT PDRN 제품이 좋다고 해 써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프뷰티에서 발견해서 고민 없이 담았다”며 저렴한 가격이 구매 결정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이 장바구니에 담은 제품 가격은 약 9만원어치에 달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바스켓 데이’ 블로그 후기에는 많게는 20만원 상당의 제품을 담았다는 사례도 적지 않게 올라와 있었다.
오프뷰티는 대명화학 산하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의 국내 최초 창고형 뷰티 아울렛이다. 오프뷰티는 20%부터 최대 90%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초저가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오프뷰티가 국내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직접 매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통 플랫폼은 벤더사를 끼고 매입해 수수료가 더 붙는다. 오프뷰티는 브랜드사의 과잉 재고나 시즌 이월상품 등을 직매입해 판매한다. 또 유통기한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라 양호하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은 따로 추가할인을 더 해준다.
오프뷰티는 2025년 5월 광장시장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이후 3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창원, 거제 등에도 매장을 열어 올리브영의 독주에 맞서 소비자 인지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안으로 100개까지 매장을 늘리겠다는 목표다.
오프뷰티는 지난해 목표로 설정한 매출 200억원을 이미 돌파했다. 올해는 5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프뷰티 측은 현재 추세라면 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화장품 구매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정가로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드물어졌다. 할인율이 높은 플랫폼을 골라 소비한다. 플랫폼마다 할인율이 달라 가장 저렴한 플랫폼을 찾기 바쁘다. 과거 신제품 출시나 한정판 마케팅이 구매를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얼마나 싸게 샀는지”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소비 환경이 변하면서 뷰티 업계의 유통 전략도 ‘가성비’와 ‘초저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가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하는 ‘가성비’를 따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뷰티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창고형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 같은 매장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 ‘다이소’ 등도 인기다.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출시한 뷰티 자체 브랜드(PB)다.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는 기초 스킨케어와 향수 등 20여 종의 상품을 출시했다.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의 클렌징폼은 3900원, 토너는 4900원, 세럼은 5900원이다. 초저가로 스킨케어를 구매할 수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 관계자는 “고물가 상황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고객을 위해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높인 초저가 뷰티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며 “앞으로 선케어, 보디케어 등 다양한 뷰티 카테고리에서 필수 기능에 집중한 가성비 제품군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지난 2월 12일 서울 양천구 현대백화점 목동점에 ‘무신사 스탠다드 목동점’을 열고 매장 내에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 단독 오프라인 매장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온라인 중심이던 초저가 전략을 오프라인까지 확장한 셈이다.
사실상 초저가, 가성비 뷰티의 시작을 연 건 다이소였다. 다이소는 직접 제조하는 방식 대신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초저가 라인을 만들었다. 다이소 뷰티의 핵심은 균일가로 균일가 정책에 맞춰 성분과 배합을 조정한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선보였다. 특히 VT의 ‘리들샷’은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작년 초 뷰티 인플루언서 ‘로로’가 언급한 ‘물광 레시피’가 화제였다. “다이소의 VT 리들샷, pdrn 세럼, 메디필 랩핑 마스크를 이용하면 1만1000원에 피부과 물광주사 500대 맞은 피부가 된다”고 말했다. 이 조합이 인기를 끈 배경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접근성이 자리하고 있다.
초저가에 맞춰 성분과 배합을 좀 조정하더라도 싼 가격에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대기업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4년 9월 다이소 전용 브랜드 ‘미모 바이 마몽드’를 론칭했다. 로지-히알론 리퀴드 마스크가 ‘화잘먹 스킨’으로 알려지며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LG생활건강도 다이소 전용 브랜드인 CNP의 세컨드 브랜드 ‘바이 오디-티디(Bye od-td)’를 론칭했다. 다이소 전용 브랜드들은 대부분 3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균일가, 초저가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들은 초저가 라인에서 얻는 마진이 크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접점 확대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고물가라는 시대적 환경과 함께 ‘리트머스 소비’가 자리하고 있다. 리트머스 소비란 고가 제품을 구매하기 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 제품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지 시험해보는 소비 방식을 의미한다.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는 전략적 소비다. 뷰티업계의 초저가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소비 기준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창고형 뷰티 아울렛이나 재고 직매입 기반 매장 등 새로운 뷰티 유통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배현의 인턴기자 baehyeonu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