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시장이 인공지능(AI) 특수에 힘입어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미국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독일 지멘스EDA 등 주요 기업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수주 잔고를 갈아치우며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특히 올해 TSMC와 삼성전자 간 2㎚(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세 공정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반도체 설계 수요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2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2위 EDA 업체인 케이던스는 지난해 4분기 매출 14억 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 성장한 수치로, 시장 예상치(14억 2000만 달러)를 상회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 역시 1.99달러를 기록해 전망치인 1.91달러를 넘어섰다.
업계 1위 시놉시스의 성장세는 독보적이다. 지난해 4분기 매출 22억 5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16억 3600만 달러) 대비 38% 급증했다. 연간 매출 또한 70억 54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주당순이익(EPS)은 2.39달러로 전년 동기(1.79달러) 대비 크게 늘었다. 3위인 지멘스EDA 역시 견조한 실적을 냈다. 지멘스 그룹 내 EDA 사업이 포함된 '디지털 인더스트리(DI)' 부문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45억 유로, 영업이익은 37% 급증한 8억 4000만 유로를 달성했다.
EDA 기업들의 이같은 실적 고공행진의 비결은 미 빅테크 기업들의 AI 반도체 자급자족 열풍이 꼽힌다. 기존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들이 주 고객이었으나, 최근에는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 빅테크들이 자체 칩 설계에 뛰어들며 신규 고객사로 대거 유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선 빅테크들은 설계 경험이 부족해 개발 기간을 단축해 주는 고성능 EDA 툴이 필수적"이라며 "이들에게 EDA 툴은 단순한 비용을 넘어 시장 선점을 위한 핵심 투자"라고 말했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도 EDA 업체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올해 TSMC와 삼성전자의 2나노 양산 경쟁이 시작되면서 차세대 설계 툴 수요는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2㎚ 공정부터 본격 도입되는 차세대 구조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은 설계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더 정밀하고 고도화된 툴이 요구되면서 전체 설계 비용 중 검증 및 설계 툴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올해도 EDA 업체들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EDA 업체들의 수주 잔고는 사상 최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놉시스가 밝힌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고는 무려 114억 달러(약 15조 원)에 이른다. 케이던스 역시 78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일감을 확보했다. 케이던스 관계자는 컨퍼런스콜에서 "2026년 매출의 약 67~69%가 이미 확보된 수주 잔고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