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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살 소리꾼 박애리의 도전…5시간 홀로 서는 심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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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살 소리꾼 박애리의 도전…5시간 홀로 서는 심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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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전남 목포의 한 국악원을 우연히 찾았던 아홉 살 소녀는 난생 처음 듣는 판소리 가락에 발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나도 저거 잘 할 수 있는디." 이날 9살배기 박애리가 뽑아낸 곡조에 매료된 소리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기가 무슨 한이 있건디 애원성(한과 슬픔을 나타내는 음색)을 타고났다냐. 어머니, 이 아이 소리해야겄소."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판소리 명창이 돼 대중과 전통을 잇고 있다. 댄서 팝핀현준의 아내이자 동반 방송을 통해 국악인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소리꾼 박애리(49). 화려한 조명은 잠시 뒤로 한 채 그는 소리꾼의 가장 치력한 전장인 '완창' 무대로 돌아온다. 2018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올렸던 '심청가'를 오는 7일, 8년 만에 달오름극장으로 옮겨 다시 부를 예정이다. 박애리를 지난 4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8년 만의 '심청가' 완창입니다. 다시 이 고단한 길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방송이나 다양한 협업 무대를 통해 국악을 알리는 일도 소중하지만 소리꾼에게 완창은 자신의 '본분'에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입니다. 매 연말마다 완창을 들려주시는 안숙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소리꾼이 공부를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한 게 완창'이라고요. 이걸 늘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대중 활동을 하다 보면 자칫 무게중심이 소리 밖으로 옮겨갈 때가 있지요. 대여섯 시간을 홀로 끌어가야 하는 완창은 그 흩어진 중심을 다시 판소리의 깊은 곳으로 끌어다 놓는 작업입니다. 티켓이 바로 매진됐다 들어서 두려움도 있지만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소리꾼으로서 저를 다시 세우는 재미가 있어요."


    ▷이번에 선보이는 소리는 '강산제 심청가'입니다. 강산제만의 미학을 이번 무대에서 어떻게 녹여내실지 궁금합니다.
    "강산제는 조선 말기 명창 박유전 선생이 창시한 유파로, 흥선대원군이 그의 소리를 듣고 '천하 강산(江山)에 제일'이라 칭송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아정(雅正)함'이에요. 슬픔을 과하게 쏟아내기보다 절제하고 격조 있게 다스리죠. 사설의 짜임새가 치밀하고 품격이 느껴져요. 특히 '심청가'는 인간의 따뜻함을 그리는 이야기인데요. 심청의 효성으로 심봉사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맹인이 눈을 뜨는 기적의 메시지를 정교한 성음으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창자(唱者)로서 느끼는 '심청가'의 무게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 같습니다.
    "어릴 땐 고음을 잘 지르고 기교만 좋으면 만족했죠. 하지만 이제는 선율과 장단을 익히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살아가며 쌓이는 인생의 경험치가 소리에 녹아나야 비로소 진짜 소리가 돼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결혼해 어미가 되어보고 나니 심봉사가 자식을 잃고 젖동냥을 다니는 아픔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배고픈 아기는 우는데 심봉사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어찌할 줄 몰라 청이에게 모진 말을 쏟아 붓다가 이내 다시 아이를 보듬습니다(이 말을 할 때 박애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창자가 슬픔에 너무 빠지면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 없으니, 제3자의 전달자로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요. 이제야 '소리는 평생 공부'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해요."





    박애리의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21세 무렵, 그에게는 소리꾼으로서 사형 선고와도 같은 시련이 찾아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절망했던 시기가 있었다고요.
    "대학 시절 성대결절과 변성기가 함께 왔어요. 맑고 고왔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죠. '애리의 목이 넘어갔대'라며 수군대는 소리에 세상이 무너진 듯 했어요. 9살 때부터 명창의 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소리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포기할 수 없었죠. 묵언수행하듯 머리로 소리를 연습하고, 숨을 균일하게 내뱉는 발성을 연구했어요."

    이 시기를 지나 박애리는 그야말로 '소리와 몸이 붙어버린' 상태가 됐다. 길을 걸을 때도 전봇대를 지나 다음 전봇대로 향하는 동안 숨을 균일하게 유지하며 소리를 내는 훈련을 악착같이 되풀이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운전대를 잡을 때도 입으로는 소리를 뱉고 아니리를 되뇌었다. 친구들이 "애리는 소리병에 걸렸어야"라며 혀를 내둘렀을 만큼 지독한 몰입 끝에 얻은 '하성(낮은 음)'의 깊이는 지금 그의 소리에 큰 자산이 됐다.




    대중에게 박애리는 스트리트 댄서 팝핀현준의 아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장르의 만남은 국악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그를 다시 '전통'으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남편과의 협업이 소리꾼 박애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요?
    "현준 씨는 제 안의 보수적인 틀을 깨뜨린 사람이에요. '예술가에게 필요한 용기를 내보라'고 해 줍니다. 남편 덕분에 힙합과 국악의 결합을 시도하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어요. 어느날 남편이 '당신이 바라는 국악 대중화를 이루려면 젊은이들이 어떤 취향인지, 어디서 즐거워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 말에 힘을 얻어 스냅백을 쓰고 랩도 해봤습니다(웃음). 외부로의 확장이 거셀수록 제 내면에서는 '판소리를 정말 잘하는 명창'이 되고 싶다는 본질적인 꿈이 더 선명해졌어요. 결국 대중과 호흡하며 얻은 에너지를 가지고 제가 돌아와야 할 곳은 판소리여요."

    ▷이번 완창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강산제의 기품처럼,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응어리를 해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올해 한국 나이로 딱 쉰이 됐습니다. 깊이 표현할 에너지가 있으면서도 삶의 나이테가 소리에 얹어지는, 창자로서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아티스트로 얻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창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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