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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전부였던 여인의 최후...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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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전부였던 여인의 최후...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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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2년 1월의 어느 겨울 저녁.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툴라 지방의 한 기차역에서 30대 여성 안나 피로고바가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졌다. 연인 알렉산더 비비코프가 다른 여자에게 청혼하자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

    지역 신문에 실린 이 사건은 인근에 살던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오 톨스토이에게도 전해졌다. 그의 아내 소피아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당시 처참한 사건 현장에 다녀온 뒤 큰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2년 뒤, 강렬하고도 고통스러운 톨스토이의 기억은 불멸의 고전 <안나 카레니나>로 되살아났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와 행복을 갈망했던 한 여인, 안나 카레니나의 삶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018년 국내 초연, 2019년 재연에 이어 7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이야기다.


    19세기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당시 귀족 사회에서 만연했던 불륜을 소재로 다룬다. 고위 관료 알렉세이 카레닌의 아내로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안나는 어느 날 젊고 매력적인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안나는 진정한 행복을 위해 아들 세료자마저 남겨두고 브론스키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사랑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한다. 브론스키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지고, 기댈 곳 없는 안나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홀로 견디다 끝내 기차역 아래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브론스키를 처음 만났던 그 기차역에서다.





    '안나 카레니나'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주연 배우의 역할이 막중하다. 초연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른 옥주현은 안나 역에 요구되는 고혹적인 아우라와 폭발적인 성량, 섬세한 감정 연기를 너끈히 소화해냈다. 개막 전, 캐스팅 독식 논란이 불거졌지만 '왜 그가 안나여야만 하는가'를 실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특히 아들 세료자를 품에 안고 절절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에선 어머니로서의 죄책감과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안나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백미는 2막이 끝나갈 무렵 오페라 가수 패티가 부르는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다. 패티 역을 맡은 실제 성악가(한경미·강혜정)의 애절하면서도 힘 있는 고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눈물과 엷은 미소가 뒤섞인 옥주현의 표정 연기는 오페라글라스로 가까이 들여다 봐야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러시아 귀족 사회의 화려한 분위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무대 연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왈츠와 마주르카가 어우러진 무도회 장면은 19세기 사교계의 우아함을 생생히 펼쳐 보이고, 스케이트장 장면은 역동적인 군무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 전반적인 무대 연출은 LED 화면을 활용했는데 극적인 장면 전환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공연 중반, 음향 장치의 기계음이 크게 들려 몰입이 방해됐다는 점은 여러 관객이 아쉬움으로 지적한 부분이다.


    작품은 불륜을 저지른 안나를 단죄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버렸지만 재만 남은 사랑 앞에 좌절하고 무너져 가는 한 인간의 삶을 그저 담담히 따라갈 뿐이다. 톨스토이의 가치관을 반영한 캐릭터, 레빈의 사랑 이야기를 안나의 서사와 비교해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공연은 다음 달 29일까지 이어진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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